“자서전을 쓰면 뭐가 좋은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몇 년 전에 만난 A 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는 ‘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타들어가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이 불행하던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싶어서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자서전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저렇게 싸우다가 이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어요.”
장남이던 그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불행한 청년기를 보냈다. 남들로부터는 성실하고 얌전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상처받은 어린 소년이 들어 있었다. 자주 불행했고, 자주 부모를 원망했다.
게다가 자신의 결혼 생활 또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서전을 쓰기 위해 가계도를 그려보고,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척들을 만나서 부모의 과거를 추적해보는 과정에서 그는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큰 깨달음과 치유의 과정을 겪었다.
그의 어린 시절, 즉 부모의 싸움이 계속되던 그 시절이 부모 각자의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풍비박산 난 집안의 대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해야 했고,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A 씨의 어머니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으며, 어머니 또한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하게 된 불행한 차녀였던 것이다.
자서전 쓰기는 과거의 상처와 대면하고 이해함으로써 인생을 긍정하게 한다.
“생전 처음으로 부모가 나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화를 내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등록금 납부일을 하루라도 넘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A 씨는 평생 처음으로 부모의 긍정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내면의 분노가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이래 봬도 소중한 존재구나’라는 자기 인식도 갖게 됐다. 아내와 관계에 대해서도 전과는 다른 통찰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야 아내한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부모처럼 싸우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죠.”
나는 A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은 해석’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우리 인간이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해석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자서전은 과거의 인생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과거의 불만과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나의 과거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과거를 돌아보거나 자서전 같은 글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고, 나중에, 은퇴한 후에, 한가해지면, 최소한 일흔이 넘은 후에 써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 갑자기 ‘나의 역사’를 쓰게 되고 올해 초부터는 ‘자기 역사 쓰기 교실’까지 진행하면서 내가 직접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건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쓰는 것, 그 이상이라는 점이다. 자기 역사를 써보는 것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확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