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는 인터넷 기업들이 제공하는 효용과 편리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이 야기하는 정보 독점과 같은 문제 상황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중국은 올여름 내내 인터넷 산업에 대해 각종 규제 정책들을 쏟아냈고 미국에서도 거대 플랫폼의 독점을 어떻게 견제할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는 인터넷 산업이 주요 국가들에서는 성장의 정점을 지났음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에서 인터넷 산업이 피크를 찍은 것은 아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인터넷 산업이 이제 막 성장 초입에 들어섰다. 아시아의 이머징 국가(신흥국)들에서 어떤 인터넷 기업들이 성공을 준비하고 있을까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도입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본격화되고 있다. 그 배경은 인터넷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 인프라스트럭처가 이제야 정착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 초고속 유선망인 브로드밴드(광대역 통합) 서비스가 전국 에 제공됐고 이에 힘입어 네이버 등 PC 기반의 인터넷 기업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놀랍게도, 이머징 국가 중 브로드밴드 유선망을 제대로 구축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이들 국가에서는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PC 기반의 인터넷 기업들이 터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 전후로 동남아시아 및 인도 등지에서 모바일 인터넷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4세대(G) 무선 통신망이 구축되자 인터넷 사업을 위한 인프라스트럭처가 무르익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다. 인도의 통신사들은 장기간 치열한 경쟁 환경 때문에 적자가 심했고 이 때문에 2010년대 초 선진국에서 4G 통신망이 구축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4G 투자를 주저해왔다. 하지만 릴라이언스(Reliance) 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신규 진입, 2015년부터 대규모 4G 투자를 감행한 덕에 인도 역시 2019년쯤에는 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접근이 가능해졌다. 모바일 데이터 1G(기가바이트)당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제는 대다수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인터넷 사용을 위한 통신망이 완성됐다고 로컬 기업이 성장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영역들은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선점돼 있어 후발 주자가 진입하기 어렵다. 소셜미디어(SNS)나 비디오 플랫폼 영역에서는 토종 기업들이 페이스북(왓챕), 라인,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를 갖춘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토종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이커머스나 음식배달, 공유 차량 서비스처럼 오프라인 사업자와의 공급망 구축이 중요한 사업 영역이 그렇다. 이커머스의 경우에는 현지 소비자 트렌드에 맞는 로컬 상품을 소싱하고 또 상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하기 위해 수많은 로컬 파트너들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해외 기업이 특별히 잘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듯이 최근 인도 및 동남아시아 주식시장에 상장했거나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이런 부류의 인터넷 기업들이 많다.
게임社 ‘SEA’ 성공 비결은 이커머스 플랫폼
이와 관련 최근 필자가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첫 번째 기업은 씨(SEA)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동남아시아의 게임 유통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후 게임 개발사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게임인 프리파이어(Freefire)는 동남아시아 및 남미 지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진짜 성장잠재력은 이커머스 부문에 있다. SEA의 자회사인 쇼피(Shopee)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에서 이커머스 1위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쇼피의 부상은 동남아시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이었던 라자다(Lazada)가 알리바바의 원격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등 그룹으로 밀린 것과는 대조된다.
쇼피가 선두에 올라선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게임 사업으로부터 큰 지원을 받았다. 게임 사업으로부터 영업 현금이 풍부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초기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한 이커머스 사업을 두려움 없이 키울 수 있었다. 다른 이커머스 기업 역시 벤처캐피털의 자금 지원을 받았으나, 과감성 측면에서는 쇼피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각국에서 동사의 게임을 즐기는 수억 명의 유저에게 이커머스 플랫폼 마케팅을 함으로써 고객 확보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다. 게임 회사가 이커머스에서 성공한 사례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둘째, 현지화를 강조한 경영 문화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이 회사는 각국 현지 경영인에게 상당한 인센티브와 의사결정권을 줬다. 우리는 흔히 이 국가들을 아세안이라고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마다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매우 다르다. 이 때문에 일원화된 경영 방침을 적용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만큼 각국의 특성을 고려한 현지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쇼피 이외에도 라자다, 토코피디아(Tokopedia), 부카라팍(Bukalapak) 등이 경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부카라팍은 최근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에 상장한 회사다.
현재 쇼피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기에는 시장 기회가 여전히 크다. 2억7000만 명의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침투율은 15%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35%)이나 중국(25%)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전자상거래 침투율이란 전체 소비 지출에서 전자상거래(온라인쇼핑)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