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P는 어떻게 직장인과 은퇴자의
삶에 무기가 되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다만 제대로 알아야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싸움터에 나가는 장수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무기를 장수의 손에 쥐어 준다고 한들 장수가 무기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IRP도 마찬가지다. IRP가 절세와 노후 준비 수단으로 뛰어난 기능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없다. 그러면 지금부터 IRP가 언제 어떻게 내 삶에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직장 옮길 때마다 받는 퇴직금,
IRP에 모아서 연금으로 받는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한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5년 10개월이고, 정규직 근로자는 8년이었다. 처음 취업해 은퇴할 때까지 적어도 두세 번 이상 직장을 옮긴다는 얘기다. 문제는 퇴직금이다. 이직할 때 받은 퇴직금을 이런저런 용도로 써버리고 나면 은퇴한 다음 노후생활비 재원이 모자랄 것은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IRP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직할 때마다 받은 퇴직금을 IRP에 모아 두었다가 노후에 연금으로 받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55세 이전에 퇴직할 때만 퇴직금을 IRP로 의무 이체하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4월 14일 이후부터는 퇴직연금 가입과 무관하게 55세 이전에 퇴직하는 근로자는 퇴직금을 IRP에 이체해야 한다. 다만 퇴직금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상환하거나 퇴직금이 3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일시에 현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그렇다면 IRP로 이체한 퇴직금은 중도에 찾아 쓸 수 없는 걸까?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이나 전세자금 마련, 장기요양 등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립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부득이하게 자금을 인출해야 한다면 IRP를 해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혹시 IRP를 중도해지 했을 때 가입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퇴직금을 IRP에 이체하지 않고 일시에 현금으로 수령했을 때 내야 했던 퇴직소득세만 납부하면 되고,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금은 없다.
IRP에 이체한 퇴직금은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이때는 연금 수령액에 퇴직소득세율의 70%에 해당하는 세율로 세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홍길동씨가 퇴직금 2억원을 일시에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로 200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고 해 보자. 이 경우 홍길동씨의 퇴직소득세율은 10%가 된다. 하지만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면 7% 세율을 적용받는다. 연금 수령 연차가 10년을 넘어서면 퇴직소득세율의 60%에 해당하는 세율을 적용받는다.
그렇다면 여러 직장을 옮길 때마다 받은 퇴직금을 하나의 IRP에 모아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율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홍길동 씨가 A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 5000만원(퇴직소득세 300만원)과 B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 1억5000만원(퇴직소득세 1300만원)을 IRP에 이체한 다음 연금을 수령한다고 해 보자. 이 경우 홍길동씨가 받은 퇴직금과 퇴직소득세를 전부 합쳐 퇴직소득세율을 계산한다. 홍길동씨가 직장 두 곳에서 받은 퇴직금은 2억원이고 퇴직소득세는 1600만 원이다. 홍길동씨의 퇴직소득세율은 8%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할 때는 10년 차까지는 5.6%, 11년 차부터는 4.8% 세율을 적용받는다.
해외 펀드와 해외 ETF 투자할 때
이자와 배당소득세 부담을 덜 수 있다
퇴직금이 됐든, 세액공제를 받으려고 적립한 돈이 됐든 IRP에 쌓인 적립금을 운용하면 수익이 발생된다. IRP 가입자는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부터 펀드, ETF, 리츠 등 다양한 투자상품에 적립금을 투자할 수 있고 이들 금융 상품에서 이자와 배당수입을 얻게 된다. 일반적으로 금융상품에서 이자와 배당이 발생하면 15.4%의 세금을 원천징수한다. 한 해 이자와 배당소득이 2000만원이 넘어가면 초과 금액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한다.
하지만 IRP 에서는 이자와 배당소득이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세금은 IRP에서 이들 운용수익을 인출할 때 부과한다. 55세 이전에는 운용수익에 기타 소득세(16.5%)를 부과한다. 이때 기타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하지 않고 분리과세한다. 운용수익을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에는 낮은 세율(3.3~5.5%)의 연금소득세만 납부하면 된다. 과세 시기를 뒤로 미루는 동시에 세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해외 펀드와 해외 ETF 투자자들이 이 같은 절세효과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IRP를 이용하기도 한다. IRP에서는 해외 펀드와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해외 ETF에 투자할 수 있다. 일반 증권계좌에서 투자한 해외 펀드와 해외 ETF에서 매매차익이 발생하면 즉각 배당소득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IRP에서는 이들 상품에 투자해 매매차익이 발생하더라도 당장 과세하지 않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낮은 세율(3.3~5.5%)을 적용해 과세한다. 게다가 운용 기간 중 발생한 매매손실은 다른 이익과 상계해 주기 때문에 세 부담을 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