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카페와 레스토랑을 선보이며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명품 브랜드들은 가방과 의류 중심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연 명품과 푸드 비즈니스에는 어떠한 시너지가 존재하는 것일까.
명품 패션 브랜드들이 식품·외식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단순히 매장 한쪽에 유명 커피·베이커리 브랜드를 입점시켜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수준이 아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담긴 메뉴를 직접 개발하고,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사업을 확장하는 식이다. 패션에 브랜드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까지 팔겠다는 전략이 깔린 행보다.
루이 비통 오사카 플래그십 매장의 최고층에 자리한 ‘르 카페 브이’.
루이 비통은 2020년 2월 일본 오사카에 ‘르 카페 브이Le café V’를 선보였다. 루이 비통의 첫 공식 외식업체를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오픈해 화제가 됐다.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프랑스 정부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000곳을 선정하는 ‘라 리스트 2020’에서 1위를 차지한 요스케 스가의 메뉴를 제공한다. 루이 비통의 최고경영자 마이클 버크에 따르면 루이 비통은 향후 다양한 레스토랑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구찌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구찌의 첫 레스토랑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르칸치아 궁정에 위치한 ‘구찌 오스테리아Gucci Osteria’는 오픈 2년 만에 이탈리아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획득했다. 이 레스토랑은 구찌 CEO 마르코 비차리와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미쉐린 스타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의 협업으로 시작됐다. 이탈리아 문화에서 중요한 주제로 손꼽히는 음식과 패션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이 유서 깊은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샤넬은 프렌치 레스토랑 ‘베이지 알랭 뒤카스’를 오픈하며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
또 일본 도쿄에 있는 샤넬 레스토랑 ‘베이지 알랭 뒤카스Beige Alain Ducasse’는 입구부터 인테리어까지 베이지 톤으로 꾸몄고, 소품에는 샤넬을 대표하는 베이지 트위드 소재가 쓰였다. 이 외에도 버버리는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 ‘토머스 카페Thomas's Café’, 아르마니는 전 세계주요 도시에 디저트 카페 ‘아르마니 돌치Armani Dolci’, 구찌는 상하이에 ‘1921 구찌 카페1921 Gucci Café’ 등을 운영중이다. 랄프 로렌이 뉴욕에 오픈한 ‘폴로 바The Polo Bar’는 유명인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됐다.
에르메스의 식기와 소품을 사용하는 ‘카페 마당’.
국내에서도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저마다 식음료F&B사업을 운영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에르메스의 ‘카페마당Cafe Madang’은 에르메스 인기 색상인 에토프회색빛·베이지·블랙 등을 적절히 섞은 인테리어가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음식을 담아내는 접시와 커피잔, 포크와 나이프 모두 에르메스 제품이다. 고가의 에르메스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청담동 하우스 오브 디올의 루프톱에 위치한 ‘카페 디올’.
한국에서 외식업체 진출에 포문을 연 명품 브랜드는 디올이 처음이다. 디올은 지난 2015년 청담동 매장 하우스 오브 디올House of Dior 5층에 ‘카페 디올Cafe Dior’의 문을 열었는데, 당시 본업인 디올 매장보다 더 화제를 모았다. 피에르 에르메 파리Pierre Hermé Paris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료를 판매한다는 소식에 많은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가 방문했다. 덕분에 아메리카노 한 잔에 1만9,000원이라는 높은 가격대에도불구하고 인스타그램 인증샷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올해 2월 용산구 이태원동에 레스토랑을 연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국 베벌리힐스, 일본 도쿄 긴자에 이은 네 번째 ‘구찌 오스테리아’로, 한국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4층에 오픈한다. 또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는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IWC가 운영하는 ‘빅 파일럿 바Big Pilot Bar by IWC & Center Coffee’가 문을 열었다. IWC가 카페를 낸건 세계 최초다.
전문가들은 MZ세대에게 먹거리는 패션의 일종이라고 분석한다. SNS의 발달로 어디서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등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중과 공유하는 일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처럼 음식은 개인의 계급적·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은 “여전히 의류와 액세서리가 패션 산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패션이란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는 입는 옷만큼이나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에 패션의 범주가 의류에서 리빙, 푸드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은 ‘패션은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패션은 단순한 옷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은 바람에 깃들어 공기 중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또 들이마신다”라고 말했다.
먹고, 마시며, 쇼핑도 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패션 매장의 개념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 10 꼬르소 꼬모가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느린 패션’이라는 철학으로 예술·패션·음악·디자인·음식·문화가 융합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2008년 한국 청담동에 들어온 10 꼬르소 꼬모 역시 서점과 카페, 레스토랑, 라운지, 정원이 한데 어우러진 10 꼬르소 꼬모 카페10 Corso Como를 두고 있다.
패션 브랜드가 만든 레스토랑과 카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미각·후각·시각·촉각 등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보라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브랜드를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감각이 바로 미각과 후각이며, 어린 시절 입었던 옷을 성인이 된 이후에 꺼내 입을 수는 없어도 맛있게 먹은 음식을 한 번은 찾게 되듯이 맛으로 경험한 브랜드의 이미지는 소비자에게 상당히 오랜 기간 각인되기 때문이다.
트렌드는 의→식→주의 순서로 움직이지만, 트렌드 주기는 의생활이 가장 짧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 식생활과 리빙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옷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에 비해 식생활과 주거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훨씬 어렵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식생활과 주생활은 잘 드러내지 않던 영역이었는데 지금은 일상을 SNS에 드러내는 것이 빈번하고, 관심도가 증가하다 보니 트렌드 수용은 물론 속도도 함께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답답한 시기에 ‘작은 사치’를 즐기는 트렌드도 한몫 더하고 있다. 명품 가방과 의류를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커피와 식사 한끼 등 비교적 가벼운 소비로 사치를 부리는 행위다. 이로써 앞으로도 명품 브랜드들의 F&B 확장은 계속될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소비자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불러들이는 유인책으로
매장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선보이며 상품 판매 가능성을 높이고,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