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는 비아그라(Viagra)를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페니실린의 양산을 추진해, 오늘날 코카콜라 시총 규모에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다. 170여 년에 달하는 화이자의 발전사는 현대 제약산업의 축소판이자, 현대 대형 제약회사가 직면한 난국과 초조함을 대표한다. 수많은 100년 제약회사와 마찬가지로, 화이자도 독일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1849년 찰스 파이저와 찰스 에어하트를 포함한 사촌들은 2,500달러의 자본금으로 화이자를 설립했다. 화이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 세 차례의 전쟁을 통해 큰 부를 이뤘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화이자는 북군에 타르타르산, 모르핀 등의 제품을 공급해, 북군의 주요 의약품 공급업체가 되면서 큰 돈을 벌었다. 무엇보다 화이자를 돈방석에 앉혀준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코카콜라의 성분표를 살펴보면 물, 설탕, 카페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연산(레몬산) 등으로 코카콜라의 성분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화이자는 코카콜라의 구연산 주요 공급업체였다. 초창기에는 레몬과 라임을 통해서 구연산을 추출했는데, 이탈리아는 라임의 주요 산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해상 운송이 끊기자 유럽의 라임을 미국으로 운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코카콜라는 물론이고 화이자도 매우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1917년 화이자의 화학자 제임스 커리(James Currie)가 아스페르길루스 니제르(Aspergillus niger: 검정곰팡이)를 사용해 설탕에서 구연산을 생산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전쟁 중에 코카콜라는 군수품으로 세계 각지에 수출되었다. 코카콜라에 들어간 구연산은 당연히 화이자가 공급한 것이었다. 구연산의 시장가격은 1919년 파운드당 1.25달러에서 1920년 20센트까지 떨어졌다.
당시 화이자는 제약회사라기보다는 실은 화학공장에 가까웠다. 화이자를 명실상부한 제약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28년 영국 과학자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었지만, 정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영국에 사상자가 속출하자 영국 정부는 페니실린 생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전에 화이자가 구연산을 생산한 경험이 있었으므로 미국 정부는 1941년 화이자와 접촉했고, MSD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BMS)도 페니실린 생산 연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1944년 페니실린의 대규모 양산에 성공했다. 하루 생산량이 이전 한 해 생산량을 초과할 정도였다.
화이자는 고유의 발효 기술 덕분에 페니실린 양산의 주력 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화이자는 페니실린을 최전선에 대량 공급했고, 노르망디 상륙 기간에 연합군이 휴대한 페니실린의 90%가 모두 화이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페니실린의 양산 경험을 기반으로 1949년 화이자의 과학자들은 수만 개의 토양 샘플을 연구한 후, 다양한 치명적인 세균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옥시테트라사이클린(oxytetracycline: 테라마이신 주요 성분)을 발견했다. 화이자는 옥시테트라사이클린을 등에 업고 화학회사에서 제약회사로 화려한 변신을 할 수 있었다. 옥시테트라사이클린은 화이자 사상 최초의 브랜드 의약품이 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화이자는 5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한편, 화이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품은 누구나 다 아는 작은 파란색 알약 비아그라다. 비아그라의 발명은 상당히 극적이다. 화이자는 1985년부터 항응고와 혈관확장약물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인체 내 PDE(인산디에스테르 가수분해효소) 억제를 통해 cGMP(고리형 구아노신 일인산)라고 불리는 생화학 인자가 정상적으로 작용해 혈관을 확장시키려는 취지였다. 5년간의 연구 개발을 거쳐 1,500여 가지의 화합물을 선별한 끝에 마침내 구연산 실데나필(Sildenafil)이 발견되었다. 당시 실험에서 이 약물이 혈관 확장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막상 임상실험에서는 효과가 미미했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상심했지만, 이내 이 약물의 또 다른 신기한 기능을 발견했다. 구연산 실데나필은 ‘남성 발기 부전’ 치료에 좋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항고혈압, 항응고제로서 구연산 실데나필은 분명 실패했지만,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로서 개발을 계속해 나갈 의향이 있는가?”를 놓고 연구개발팀은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제품인 의약품 ‘비아그라’가 1998년 정식으로 출시되었다.
출시 후 제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에만 20만 명이 넘는 의사가 300만 명의 환자에게 700만 건 이상의 처방을 내렸고, 관련 비아그라 제품은 5천만 정이 넘었다. 이 밖에, 화이자는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 분야에서도 높은 해자를 쌓았다. 예를 들어, 1982년에 출시된 피록시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처방 소염제가 되었고, 1992년에 출시된 혈압강하제 암로디핀은 1999년 전 세계 매출이 3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0년 이후 화이자는 M&A 여정에 돌입했다. 2000년 화이자는 900억 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워너 램버트(Warner Lambert)를 사들였다. 이 거래를 통해 화이자는 지질 저하 효과를 지닌 아토르바스타틴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이 약이 세운 연매출 129억 달러의 기록은 지금까지 누구도 깨뜨리지 못했다.
2003년에는 600억 달러로 파마시아(Pharmacia)를 인수, 유명한 관절염 치료제인 셀레브렉스(Celebrex)의 모든 소유권을 얻었다. 2009년에는 680억 달러로 와이어스(Wyeth)를 인수하며 기존 화학 약품에서 바이오제약 분야로 진출했다. 당시 와이어스의 폐렴 백신 프리베나는 글로벌 베스트 셀러 제품이었다. 이후에도 화이자는 잇달아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종양 등의 분야에서 선도 기업을 인수하며,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
2015년 화이자는 호스피라(Hospira)를 17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무균 주사제 제네릭(Generic: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를 주로 생산하며, 화이자가 보유한 기존 복제약시장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주었다. 2016년에는 많은 경쟁사를 제치고 현금 140억 달러에 미국 항암제 제조사인 메디베이션(Medivation)을 인수, 종양 분야에서 선두 자리로 단번에 올라섰다.
이러한 적극적인 M&A 행보는 업계에서 ‘화이자 모델’로 불리기까지 했다. 간단히 말해 가치가 있는 제품을 보면, 인수합병을 통해 제품을 비롯한 상대 기업을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이다. 이런 단순하고 거친 몸집 불리기를 통해 화이자에겐 블록버스터와 스타 제품이 하나둘 생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몸집만 비대해지는 상태에 빠졌다. 매출은 해마다 세계 제약회사 1위를 차지했지만, 물밑에서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아그라 이후 화이자가 자체 개발한 주력 상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춤을 추기가 어렵다. 제약 회사를 보면, 대규모 우위의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규모와 매출은 늘었지만 이에 상응하는 연구개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제약업계에서 비교적 건전한 R&D 비용은 연매출의 15%~20%이다. 그러나 확장 모델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얻는 데 열중한 화이자는 신약 R&D 비용을 계속 줄여왔으며, 2013년까지 R&D 비용은 연매출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제약업계 전체를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구와 혁신이야말로 산업 발전의 기초이다. 또한 각국의 의약품 관리감독기관은 신약 심사에 점점 더 신중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전 세계 주요 제약회사는 보편적으로 특허 보호기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구개발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고 기존 약물의 특허는 계속해서 기한을 넘기고 있지만, 신약 개발은 제때 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개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합리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오픈 소스 커뮤니티와 같은 R&D 커뮤니티(기존 특허 보호 모델의 포기를 의미함)를 구축하거나 전체 연구개발을 분해함으로써 초기 실험실 연구와 중간 임상시험을 분리, 여러 개의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각자 맡은 업무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규모가 작고 전문화된 기업들이 대기업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표가 명확하고 짊어진 R&D 비용이 낮기 때문에 명확한 연구 성과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오늘날의 제약업계는 규모 우위가 더 이상 뚜렷하지 않다. 심지어 몸집이 크면 클수록 혁신 기회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규모의 프리미엄이 점점 낮아지면서 화이자와 같은 ‘코끼리’들은 한번쯤 화려한 ‘변신’을 할 필요가 있다. 화이자도 과거 잘못된 발걸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