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2. 06. 07
왕촨푸의
BYD
The Sage Inve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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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 전기차 회사이자 배터리 제조사인 BYD의 창업주 왕촨푸(王傳福). 무섭게 질주하는 창업자로서 그의 행동은 항상 세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솔직하다, 진실하다,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 우아하다 등 그에 대한 좋은 평가는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그도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은 브랜드가 진통을 겪게 된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 민간 자동차기업에는 두 명의 ‘복 받은 리더’가 있다. 바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왕촨푸와 자신을 드러내는 걸 즐기는 지리자동차(Geely)의 리수푸(李書福)다. 두 사람의 성향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왕촨푸가 호소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술 연구에 매진해 온 왕촨푸는 수년 전부터 조롱과 외로움을 견디며 꿋꿋하게 자동차 제조의 길을 걸어왔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자동차를 잘 모르는 왕촨푸가 오늘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동차맨이 되기까지
2002년 BYD 홍콩 상장 직후, 왕촨푸는 제2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설립된 1995년 이래 BYD의 주요 사업은 휴대폰용 배터리 제조였다. 그때 마침 산시성(陕西省) 시안(西安)에 위치한 친촨(秦川)자동차 공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 내부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BYD의 공장 인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1년 후 BYD는 2억 7천만 위안에 친촨자동차의 지분 77%를 인수했다.

지분 인수가 공식 체결되기 며칠 전, 왕촨푸는 회사 측근에게 “희망이 있다고 보느냐?”라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측근은 “이건 위험한 게임이다”라며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상황은 그만큼 녹록치 않았다. 1년 후 BYD는 상하이에서 자체 개발한 차종 ‘316’을 출시했다. 왕촨푸는 ‘316’을 들뜬 마음으로 소개했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딜러들의 난처한 표정이었다. 쇼가 끝난 후 그는 쇠망치로 316을 때려 부쉈다. 이때부터 BYD는 진정한 자동차 제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 왕촨푸는 후룬(胡潤)연구원이 발표한 중국 100대 부호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당시 BYD는 2020년까지 글로벌 생산 판매 1,500만 대라는 목표를 내걸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침체기에 빠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조조정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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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왕촨푸는 더 신중해졌다. “올해는 10%~20% 가량 성장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발언하는 등 구체적인 목표 공개를 피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3년 12월 24일, 인터넷에는 ‘테슬라 차량, 세 번째 화재 발생’이라는 뉴스가 퍼지고 있었다. 테슬라와 전기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왕촨푸는 매우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우리는 테슬라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테슬라가 잘 해야 우리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왕촨푸는 속으로 테슬라를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BYD와 테슬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기술 진영임에 틀림없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왕촨푸다. 모든 면에서 경솔함은 줄고 신중함은 늘었다.

2013년 왕촨푸는 전통적인 연료 차량과 합작 브랜드로 얽히지 않기로 결정하고, 핵심전략을 전기차를 포함하는 신에너지 차량으로 전환했다. BYD는 그해 고객 인도가 이루어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친’(秦)에 이어 탕(唐)과 한(漢)을 잇달아 출시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왕촨푸는 완전히 전기화가 되기 전까지 전기와 연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이 20년가량 사용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당시 그는 북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던 순수 전기차 테슬라에 대해서 ‘부자들의 장난감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BYD가 자동차 한 대를 완성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동차는 원래 분업이 확실한 산업이다. 엔진 기술 외에 기존 자동차 대기업의 부품 대부분이 보쉬(BOSCH), 콘티넨탈(Continental), 덴소(DENSO) 등의 부품회사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BYD의 자체 브랜드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글로벌 조립 공장이 모두 폭스바겐, 도요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수한 자원과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받기 어려웠다.

왕촨푸도 전문화된 분업이 더 효율적인 동시에 더 나은 품질, 비용, 관리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규칙은 산업 성숙기에만 적용된다고 보았다. 즉 기술 혁신 시기에는 부품 회사가 제조사에 발맞춰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사가 중심이 되어 기술을 혁신하고 부품 회사가 이에 적응해 제품을 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왕촨푸는 BYD가 기술 혁신에 있어서 내부 통합과 수직 통합(원재료, 부품 생산 등 거래업체가 하는 사업에 직접 진출하는 방식) 전략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왕촨푸는 BYD의 자동차 스마트화 기술과 제품은 BYD 전자사업부에서 지원하는 수직 통합 방식을 채택하고, 센서 등 소수의 부품만 외부에서 조달할 계획이 었다. 무엇보다 BYD는 스마트화를 위한 기술과 관리 시스템이 준비된 상태였다.

스마트화는 자율주행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열쇠이다. BYD는 글로벌 브랜드의 컴퓨터와 휴대폰 제품을 OEM한 경험을 갖고 있다. 운영체제와 코드 프로그래밍 등에도 익숙해 한때 IT 기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BYD는 다른 자동차 회사에 비해 IT 측면에서 타고난 우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왕촨푸는 두 개 분야의 차이를 분명히 꿰뚫고 있었다.

“산업분야가 가진 특성 때문에 IT 산업의 사고방식으로 자동차 산업을 이끈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IT맨들은 자동차맨의 반응이 너무 느리고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IT 소프트웨어 개발은 일주일밖에 소요되지 않고 업데이트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자동차 금형은 설계에서 제조까지 최소 6개월이 필요하다. 또 제품 구상부터 완성까지 수십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왕촨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스마트화 트렌드는 절대적이지만 자율 주행 자동차의 시장화는 아직 멀었으며 현재의 화두는 전기화이다. 전기자동차를 잘 만들면 새로운 새벽이 올 것이다.
BYD의 배터리 전쟁
“안전은 순수 전기차의 가장 큰 럭셔리이다.” 충칭(重慶)에서 열린 BYD 신차 발표회 ‘순수 전기차 시리즈: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에서 왕촨푸의 이 발언은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왕촨푸는 전기차 산업 에서의 차별화 초점을 ‘안전’에 맞추고, LFP(리튬인산철)배터리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니켈, 코발트, 망간을 주원료로 제조하는 삼원계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로 인해 오랫동안 전기차 브랜드의 주요 선택지였다. 그러나 기술 발전과 함께 삼원계 배터리와 LFP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차이가 줄어들고 있으며 비용 측면에서도 삼원계 배터리가 LFP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정책 지원도 줄어들고 있는 데다 가장 높은 비용을 차지하는 희소금속 코발트를 뺀 배터리 품의 연구는 요원한 상황이다.

왕촨푸는 BYD 산하의 배터리 회사이자 LFP배터리 제조업체인 푸디(弗迪)가 글로벌 신에너지 물결에서 중국의 위상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다면 삼원계 배터리의 왕좌를 꿰찬 CATL은 BYD의 파이 확장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2020년 3월 29일, BYD는 자체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가 못 관통 시험을 순조롭게 통과하는 영상을 외부에 공개했다. 못 관통 시험은 배터리 내부 단락(전지의 양극과 음극이 만나 발생하는 현상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을 시뮬레이션하는 테스트로, 간단히 말해 쇠못으로 배터리를 찔렀을 때 발화하거나 폭발하지 않는지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삼원계 배터리는 바늘에 찔리는 순간 폭발하며 격렬하게 타버렸다. 표면 온도가 500℃가 넘고 배터리 표면에 있던 계란이 터져서 날아갔다. 일반 LFP배터리는 화염은 없고 연기만 났다. 표면 온도는 200~400℃까지 올랐고 배터리 표면에 있던 계란이 검게 탔다.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는 화염도 없고 연기도 나지 않았으며, 표면 온도는 30~60℃를 유지, 배터리 표면에 있던 계란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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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BYD가 발표회에서 테스트를 공개한 목적은 블레이드 배터리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업계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랜 경쟁자 CATL만은 시시각각 BYD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듯했다. BYD가 테스트 결과를 공개한 지 두 달 후, CATL의 실적 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투자자들은 CATL 쩡위췬 회장에게 BYD 블레이드 배터리 테스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배터리의 안전과 배터리의 남용 테스트는 별개의 일이지만, 일부는 남용 테스트 통과를 배터리의 안전과 동일하게 여긴다.”

여기서 말한 ‘일부’는 BYD와 왕촨푸를 가리킨 것으로, ‘남용’이라는 단어는 왕촨푸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때부터 두 배터리 기업의 논쟁이 본격화되며 몇 차례의 논쟁이 벌어졌다. 사실 왕촨푸는 언젠가 대결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신에너지 자동차의 핵심 부품은 동력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연료 자동차의 엔진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기 때문에 업계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이번 배터리 안전 대결에서 CATL은 패배했다. 배터리 못 테스트가 찌른 것은, 삼원계 배터리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었다. 못 관통 테스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BYD는 점차 비밀병기를 자사 주요 모델에 빠르게 적용해 나갔다. 왕촨푸가 블레이드 배터리를 개발한 원래 의도는 사람들의 시선을 ‘연속주행 거리’에서 ‘차량 안전’ 쪽으로 옮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전은 순수 전기차의 가장 큰 럭셔리’라고 거듭 주장한 것이다.

BYD가 진행한 배터리 안전 성능 테스트는 못 관통 시험만이 아니었다. 발표회에서 대형 스크린에 다음과 같은 영상이 나왔다. 46톤 대형 트럭 한 대가 BYD 블레이드 배터리 팩 위를 지나갔지만, 배터리 팩은 액체가 새거나 연기가 나지 않고 온전했다. 이후 눌린 배터리 팩을 BYD의 EV 세단 한에 장착하자 놀랍게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비밀병기를 바탕으로 왕촨푸는 자사의 LFP 배터리를 업계 전체의 ‘표준’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푸디 배터리와 협력을 위해 협상 중이다.

이제 BYD는 배터리 공급업체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전기차 물결의 경쟁에서 기술 경쟁력을 더하기 위함이다. “BYD는 2015년 중국 최고의 자동차 생산기업이 되어 2025년 글로벌 1위로 거듭날 것이다!” 이 말을 외칠 때 왕촨푸는 전기차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 바로 BYD가 가장 잘하는 배터리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왕촨푸는 단순히 배터리의 선진성과 완벽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선은 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그곳에는 신에너지 자동차뿐만 아니라 LED, 태양광 발전 등의 산업이 펼쳐져 있다. 왕촨푸가 그리는 BYD의 미래 모습은 바로 신에너지 제국이다.
워커홀릭의 인재 육성법
왕촨푸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의도는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기업 리더의 위치까지 한 단계씩 차근 차근 올라왔다. 중요한 리더의 다른 자질에 대해 ‘과감하게 앞서가는 혁신의식’과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끈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BYD는 이미 중국 내 신에너지 자동차 업계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에는 이 ‘제왕’에 대한 의구심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물론 왕촨푸에게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

큰 성취를 얻은 사람들은 대부분 활력이 넘친다. 왕촨푸는 선전 BYD 본사와 15분 거리의 자택에 살면서 매일 출근한다.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쉰이 넘은 왕촨푸는 여전히 왕성하게 일한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데도 거리낌 없고, 회사에서 론칭한 신차의 첫 번째 시운전자를 항상 자처한다. 또한 언제든 중국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에 대한 견해와 BYD의 미래 계획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일론 머스크처럼 모험을 즐기고 평정심이 있으며 정신력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 관료가 BYD를 참관하며 배터리 오염에 대해 언급하자, 왕촨푸가 그 자리에서 전해액 한 컵을 마셔버렸다는 이야기가 BYD 내부에 퍼져 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 BYD 내부에 이런 말이 퍼져 있다는 것은 직원들이 생각하는 왕촨푸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1995년 BYD를 설립한 이후 왕촨푸는 아낌없이 자신의 전부를 회사에 걸었다. 휴대폰 배터리에서 시작해서 휴대폰 부품으로 확장하고 다시 자동차로 방향을 전환, 전기차를 개발하고 신에너지 분야로 진출한 데 이어 독과점 플레이어만 있는 모노레일 업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BYD 왕국에서 왕촨푸는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직원이 신체조직이라면 그는 ‘영혼’이다. 그는 명확한 사유와 확고한 행동으로 BYD라는 거대한 기계를 수십 년 동안 문제없이 순조롭게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는 고집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번 결심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고 부하의 의구심과 건의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포브스 차이나’(Forbes China)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은 전쟁터와 같고 경쟁은 전투와 같으며 장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 기업가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군인 왕촨푸가 ‘사병 대열’을 구성하는 방식도 다른 많은 기업가와는 매우 다르다. 통상 많은 돈을 들여 외부에서 기술자를 초빙하는 데 반해, 왕촨푸는 ‘백지’ 상태의 직원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많은 BYD 임원은 동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직원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BYD 기숙사로 들어온다. 그들에게 BYD는 회사라기보다는 대학의 연속과도 같다. 회사 리더도 지도교수와 비슷하다. BYD는 BYD 중앙연구소, BYD 전력연구소 등 여러 연구소에, 수만 명의 젊은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한 인력이다.

왕촨푸는 BYD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엔지니어라면서 “토지, 공장, 특허, 주식을 비롯한 모든 자산이 사라진다 해도 이들 엔지니어만 존재한다면 언제든 재기가 가능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BYD 고위 임원은 과거 인터뷰에서 왕촨푸는 회사의 거의 모든 일을 직접 관리 하고 매우 세심하게 다룬다고 밝힌 바 있다. 2003년 BYD가 자동차 업계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사회 구성원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자동차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거시적 안목에 동의한 것일까, 2008년 왕촨푸가 신에너지 분야에 진출하기를 희망했을 때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BYD 성장 비결, 인해전술
왕촨푸가 부유하지 않은 유년을 보낸 탓인지 혹은 기술자 출신의 사고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비용 통제’가 뼛 속까지 각인되어 있다. 이는 BYD의 성장 과정에서 비장의 무기가 되기도 했지만 업그레이드의 한계가 되기도 했다. 외부 세계의 상상과 달리, BYD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진짜 경쟁력은 선도적 기술력이 아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 우위를 극대화한 생산 연구개발 방식에 있었다.

1992년 당시, BYD가 니켈카드뮴 배터리 생산과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에 뛰어 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왕촨푸는 인해 전술을 이용한 반자동화 배터리 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즉 중국의 방대하고 값싼 노동 자원을 이용해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BYD는 일본 배터리 회사들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을 선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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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업계에 진출한 후에도 생산과 판매 측면에서 저비용 전략을 활용했다. ‘구매보다 자체 제작이 낫다’라는 기조 아래 구동 모터, 배터리·발전기·전자제어 장치, 배터리 유지보수 시스템, 동력 배터리에서 자동차 프레임, 브레이크, 완충기 그리고 차체 내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했다.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관련된 외부 공급업체가 30여 곳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이렇듯 구매보다는 제조를 선호하면서 BYD는 거의 ‘만능 플레이어’가 되었다. 휴대폰 배터리, OEM 생산, 연료 차량 및 신에너지 차량의 여러 세분화된 제조와 공정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자동차 판매 측면에서도 인해전술을 활용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자체 생산 및 자체 판매 모델은 연구개발과 생산에 더 많은 부담을 안겼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사가 기술 연구 개발에 끊임없이 비용을 투입해야 하고 내부의 생산 비용을 완전히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식을 택한 주된 이유는 전문 경영인 코스를 밟은 게 아닌 엔지니어 출신인 왕촨푸가 100km 가속, 연비, 배터리 연속주행거리, 충전시간 등 기술적 지표 돌파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촨푸는 ‘542’ 기술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에너지 자동차의 기술 지표를 기반으로 100km 5초 이내 가속, 풀타임 4륜구동, 100km당 2L 이내의 연료 소비를 실현한다는 목표다. 이런 기술 전략은 나중에 여러 시리즈의 자동차에 사용되었다.

누군가 왕촨푸에게 BYD의 추진 전략을 물어보면 그는 늘 “전기차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첫걸음은 어렵지만 결국 누군가는 걸어가야 한다. 부담과 어려움이 크지만 서광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라고 답했다.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의 선택
승리는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다. 신에너지 자동차 트렌드가 도래하면서 중국 시장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 출신이 아닌 인터넷 산업에 기반을 둔 니오(Nio), 샤오펑(Xpeng, 小鵬), 리오토(LI Auto, 理想)의 성장 기세는 BYD를 압도하고 있다.

니오 창업주 리빈(李斌)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창업한 바 있고, 샤오펑 창업자 허샤오펑(何小鵬)은 UC 브라우저 창업자 출신이다. 리오토 창업자 리샹(李 想) 역시 자동차 포털 치처즈자(汽車之家)의 창업자이다. 전기차 시장의 세 신흥강자는 모두 인터넷 업계에서 건너왔다. 이들은 투자금을 끌어당기는 매력까지 갖췄다. 게다가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판을 흔드는’ 선수라는 것이다.

또 하나, 가장 잠재력 있는 신흥주자로 꼽히는 인터넷 사고방식의 기업이 있다. 바로 샤오미이다. 샤오미가 가격 우위를 내세우며 향후 BYD의 중요한 경쟁자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힘겨루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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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촨푸는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 자체가 확대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플랫폼 기업이든 휴대폰 제조 기업이든 누구라도 전기차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다. 중국 전기차의 시장 보급률은 12%에 불과하다. 그들이 진입해서 모바일과 생태계를 활용해 연료차가 아닌 전기차를 사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전체 파이가 커지지 않을까? 커진 후에는 기술력에 따라 파이를 나누면 된다.”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가 신에너지 자동차에 몰려드는 데는 좋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누가 승자가 될까?

첫째, 핵심 과학기술을 가진 기업의 생존율이 높다. 둘째, 정확한 전략과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신에너지는 새로운 사물이다. 다양한 노선을 갖고 고민하다가 기술과 전략의 방향이 잘못되면, 많은 돈을 잃는데 그치지 않고 시간을 잃게 된다. 셋째,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신에너지 시장은 세대 교체 속도가 빠르고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쓰고 결재를 받고 검토 회의를 열어 결정을 내리다가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이 세 가지를 갖춘 기업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현재, BYD 신에너지 자동차 판매량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전년 대비 2배 넘게 증가한 약 60만 대 가량의 신에너지 차량을 판매하여 중국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점유율 1위(18.2%)를 차지했다. 블레이드 배터리, 슈퍼 하이브리드의 혁신적인 기술력과 제품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을 견뎌온 BYD가 신에너지 자동차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누군가는 버크셔 헤서웨이 부회장 찰리 멍거가 도대체 왕촨푸의 어떤 점을 좋게 본 것인지 궁금해 한다. 파트너인 워런 버핏에게 BYD를 사들여 계속 보유하도록 강권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왕촨푸를 좋아했다. 기술도 알고 경영도 이해해서 토머스 에디슨과 잭 웰치의 결합체 같다고 평했다.

둘째, 그는 경제 활성화에는 신에너지의 역량이 필요한데 BYD의 전기차와 배터리 사업은 이런 큰 흐름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는 이들이 보유한 BYD가 거인의 모습으로 성장했음을 목격했다. 위대한 투자자와 평범한 투자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위대한 투자자는 늘 작은 회사에서 거대한 투자 가치를 발견하고, 거액을 들여 매수하고 보유하며 기다리다 결국에는 잭팟을 터뜨린다. 왕촨푸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계속 BYD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었다. BYD는 중국 대표 제조기업으로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지니고 있다.

2020년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은 방역 물자 부족을 겪었다. BYD는 3만 명의 엔지니어와 10만 명의 직원을 동원해 마스크 생산라인 구축과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3일 만에 생산라인 설계도를 만들고 7일째에는 설비를 배치했으며 10일째에는 양산에 돌입했다. 24일째에는 일일 마스크 최대 생산량이 1억 개에 달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BYD는 총 1,800개 마스크 생산라인과 200대의 마스크 원재료 생산 장비를 갖추어 중국 내 마스크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BYD가 자발적으로 부담한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왕촨푸는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산을 찾아가는 길은 배움의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침착함과 평정심을 배우고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살길을 찾는지 배운다고 말했다.

이제 왕촨푸는 인생과 경제 운영 규칙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왕촨푸는 BYD의 새로운 비전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단순하게 답한다. “2025년까지 BYD가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출판사 샹제(商界) 편집부 중국 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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