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Y / Weekly 법률 ISSUE
2023. 09. 26
죽은 남편에게 빚 2억이 있었다
내가 몰랐던 가족의 빚, 상속받아야만 할까
“이런 상황에 말하긴 뭣한데요, 사실 형이 이렇게 가면 안 되거든요.”
“(코웃음) 이렇게 가고 싶은 사람 어디 있다고...”
“형이 빚이 좀 있어요. 아직… 형수한텐 말 안 했죠?”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남겨진 재산이 있다면 누구에게 귀속될까요? 민법은 이렇게 남겨진 재산의 귀속, 즉 ‘상속’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순서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받아갈 지, 즉, ‘상속의 순위’를 정해둔 거죠(민법 1000조).
민법에서 정한 상속의 순위에 따르면 직계비속이 최우선으로 상속을 받고, 직계비속이 없으면 직계존속이 각각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공동으로 상속을 받습니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다음으로 형제자매가, 형제자매도 없는 경우 4촌이내의 방계혈족이 피상속인의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선순위상속권자가 1인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후순위상속권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A씨가 자녀와 부모님이 생존한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 재산은 1순위인 A씨의 자녀에게 상속되고, 2순위인 A씨의 부모님은 상속권자가 아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 동순위의 상속권자가 한 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녀와 손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와 손자녀는 모두 직계비속에 해당하니 자녀와 손자녀가 모두 상속을 받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법은 이렇게 동순위(자녀와 손자녀는 모두 직계비속으로 1순위 상속인)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자녀)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의 상속인이 수인일 경우(=자녀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부모가 사망한 경우 손자녀는 부모님(조부모의 자녀)이 안 계신 경우에만 상속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데드라인이 있죠. 상속의 순위에 따라 상속을 받게 된 상속인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재산(상속채무 포함)을 받을지, 아니면 포기할지에 대해 결정하고, 상속을 포기하고자 하는 경우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해야 합니다.
상속은 자녀인 직계비속이 받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부모님의 사망일에 사망 사실, 즉 상속개시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상속포기를 하고자 한다면 통상적으로 사망일 다음날(초일불산입 원칙)로부터 3개월 내에 관할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는 상속재산을 한도로만 책임을 지는 ‘한정승인’을 신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한 내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의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모든 상속재산과 채무를 상속받는 ‘단순승인’을 한 것이 됩니다.
상속을 포기하면 그 상속인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되어 후순위상속권자가 있다면 상속의 순위가 후순위로 넘어가게 됩니다.
TIP.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란?
[대법원 1988.8.25. 자 88스10,11,12,13 결정]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이라 함은 상속인이 상속개시의 원인되는 사실의 발생(즉 피상속인의 사망)을 알게 됨으로써 자기가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을 말하는 것이지 상속재산의 유무를 안 날을 뜻하거나 상속포기제도를 안 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TIP. 한정승인이란?
그런데 빚이 재산보다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좌제도 아니고, 후손들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걸까요?
민법 제1028조는 상속으로 인해 취득할 재산의 한도 내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상속을 받긴 받되, 상속받은 재산보다 상속받은 채무가 더 큰 경우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지면 되고 그 이상은 상속인 본인의 다른 재산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제도입니다. 피상속인의 채무가 많거나 상속 채무의 정확한 파악이 어려울 경우에 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간혹 피상속인의 상속채무가 상속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이하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모르고 단순승인을 해버려서 상속인이 과다한 채무를 떠안게 되거나, 상속인이 미성년자이어서 상속절차나 상속재산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단순승인 해버린 경우 문제가 됩니다. 민법에서는 이런 때에도 모든 상속채무를 상속인이 지게 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보아, 상속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인이 미성년자인 경우 성년이 되어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다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민법 1019조 3항, 4항).
선순위상속권자가 상속을 포기하면 후순위상속권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앞서 선순위상속권자가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 후순위상속권자가 있다면 그 후순위상속권자가 상속을 받게 된다는 점을 알아봤는데요,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공동상속인 중 ‘배우자’가 있는 경우 조금 헷갈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머니(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권자가 되었는데, 자녀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면 일단 배우자인 어머니는 상속을 받게 됩니다. 이때, 민법 1000조의 규정상 후순위상속권자인 손자녀, 손자녀가 없다면 직계존속이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배우자가 선순위상속권자인 것으로 보아 배우자만 단독으로 상속을 받게 되는 것인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종래 판례는 배우자는 (0순위로 항상) 직계존ㆍ비속과 공동상속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되고 손자녀와 직계존속이 없는 경우에야 비로소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 판결).
그런데 2023년 3월, 대법원은 공동상속인인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판시하여 기존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대법원 2023. 3. 23. 선고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예전의 판례에 의하면 배우자는 상속을 받고 공동상속인인 자녀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더라도,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생존한 경우 손자녀와 직계존속도 모두 상속포기 신고를 해야만 비로소 배우자 단독상속이 가능했는데, 변경된 판례에 의하면 1순위 상속권자인 자녀들의 상속포기와 동시에 배우자가 단독상속을 받게 되므로 손자녀나 직계존속은 상속포기 신고를 추가적으로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TIP.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전원합의체 판례
[대법원 2023. 5. 23. 선고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상속을 포기한 피상속인의 자녀들은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칙적으로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였다는 이유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위와 같은 당사자들의 기대나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의 감정에도 반한다.
(종래 판례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에게 별도로 상속포기 재판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상속채권자와 상속인들 모두에게 불필요한 분쟁을 증가시키며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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