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상은 세대와 상관없이 경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관점을 기르며, 하나의 분야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확장된 세계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나들며 나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2024년 새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자세가 필요할까.
질문을 해보자. 지진을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글쓰기는 필요한 역량일까, 아닐까? 흔히 글쓰기는 문과의 특화 분야로 여겨왔다. 하지만 글쓰기야말로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다. 연구 논문을 저술하는 것은 물론 연구 과제를 기획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과 동료 과학자에게 알리는 모든 과정에서 글쓰기의 소양이 필요하다.
2016년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 세상은 융합의 중요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발 빠르게 문과와 이과의 통합이라는 시험 체제에 돌입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의 방법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경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관점을 기르며,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야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예술가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시대를 이끈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공감각적 능력을 연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융합의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준 개인을 소환한다면 찰스 다윈이 있다. 진화학을 일군 생물학의 선구자인 그는 동시에 지질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박물학자였다. 다윈이야말로 융합의 바탕이 되는 읽고 쓰고 소통하는 능력, 확장된 문해력Extended Literacy을 갖춘 인물이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의 연구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주고받은 편지만 해도 1만4,500통에 달한다. 해부학자 리처드 오언에게 화석 분석을, 조류학자 제임스 굴드에게 새의 표본 분석을 의뢰했다. 그뿐만 아니라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보완을 받았고,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게 미리 연구 결과를 납득시키는 등 동료와 인근 분야 전문가에게 평가를 구했다. 그는 해부학자도, 조류학자도, 식물학자도, 동물학자도, 화석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지질학자로서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그들과 소통한 것이다. 심지어 정치경제학 분야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지나치게 많이 낳은 자손 중에서 더 나은 형질을 가진 이가 집단에서 다수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다윈은 학문 바깥의 현장 전문가들도 과감히 활용했다. 정원사, 동물원 관리인, 비둘기 기르는 사람 등 학자는 아니지만 필요한 데이터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기꺼이 도움을 받았다. 종의 기원이라는 세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시작한 다윈의 질문은 한번 던져진 채로 끝나지 않고 다방면으로 뻗어나가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답을 찾아나갔다.
그의 연구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결과에만 주목한다. 물론 결과물이 성공 여부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고, 이런 분석이 갖는 의미도 분명 있지만 개인과 결과물에만 집중한다면 융합을 ‘보편적 작업’이기보다 예외적 작업으로 바라보게 될 공산이 크다. 천재적인 개인을 소환하면 융합은 예외적인 것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다윈이라는 천재에 주목하기보다 그가 활용한 보편적 작업으로서 융합의 조건을 알아내야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발휘한 리더십으로 융합의 정수를 보여준 오펜하이머
천재, 즉 탁월하고 예외적인 개인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사실 한 개인이 모든 걸 해낼 수는 없다. 공연 기획자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댜길레프는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 디자이너 코코 샤넬 등 당대 뛰어난 예술가들을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깃발 아래 모아 20세기 초 예술계를 풍미했다. 물리학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수학과 물리학 외에도 어학과 문학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말 2년 7개월 동안 원자폭탄을 만든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융합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본래 융합은 협업이다. 융합Convergence이란 단어는 여럿을 하나로 수렴Convergence한다는 뜻이다.
다윈에게 탁월한 소통 능력이 있었음도 눈여겨봐야 한다. 소통은 언어능력을 전제로 한다. 언어적 이해가 소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 언어를 잘하지 못하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영어·중국어 등 자연어라는 좁은 의미의 언어에 국한하지 않고 확장된 언어, 즉 수학·자연과학·기술·예술·디지털 등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에도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는 곧 도구다. 영어로 쓰인 모든 것을 활용하려면 영어를 익혀야 하는 것과 같다. 요즘은 번역 앱이 있어 편리하지만, 앱도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으니 기본적인 어학지식은 필요하다.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주는 전통 인문학은 이 확장된 언어라는 핵심을 놓쳐 한동안 무기력함을 보였다. 인문학은 확장된 언어를 다시 붙잡아 확장된 인문학으로 다시 우뚝 설 필요가 있다.
확장된 인문학이란 문학, 역사, 철학 등에 갇혀 있던 전통 인문학을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디지털 등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인문학이다.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두루 학습함으로써 필요할 땐 언제든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거나 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확장된 인문학은 곧 확장된 문해력으로 귀결된다.
확장된 문해력 없이 다른 분야의 조언을 구할 수 없다.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능력을 갖추는 일이 개인에게 다소 우연히 일어났기 때문에 그동안은 천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하며, 시스템의 역량을 키워 소통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확장된 세계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배우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날카롭고도 유연한 통찰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더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 어떤 세대든 예외는 없다. 내면에 쌓아둔 것이 없다면 자기 안목이 어떤 수준인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언인지 깨닫지 못한다. 새로운 기술이 많아질수록 이를 더 잘 이용하려면 기술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배움이 귀찮아 인공지능을 활용해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과 반대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격차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확장된 세계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배우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날카롭고도 유연한 통찰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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