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우주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우주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국내 첫 민간 발사체인 ‘한빛-TLV’를 독자 개발해 4분 33초 동안 정상 비행 후 무사히 낙하했다. 민간 차원의 우주여행도 지속 추진 중이다. 대항해 시대를 지도와 나침반이 열었듯, 우주 시대는 우주 망원경이 열어주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풍경 앞에 인류는 또 다른 기회를 꿈꾼다.
1990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를 타고 우주에 올라간 허블 우주 망원경은 발사 직전부터 그 이후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 허블 우주 망원경은 더 이른 1983년에 발사될 예정이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발사 일정이 1986년으로 연기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해 7명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NASA의 우주개발에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후 모든 우주선 발사 계획은 연기되었다. 발사 직전 상태로 포장되어 있던 허블 우주 망원경은 그렇게 방치된 채 잊혀갔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촬영한 창조의 기둥의 모습
하지만 결국 천문학자들은 허블을 새로운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에 다시 실었다. 새로운 우주를 탐구하고 싶은 욕망과 또 다른 우주인이 희생될 수 있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이를 뛰어넘는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허블의 임무 수행 기한은 10년이었지만, 너무나 뛰어난 성능 덕분에 계속 장비를 교체하고 수리하면서 30년 넘게 우주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사연은 다른 곳에 있었다. 허블의 후임 망원경이 데뷔 일자를 자꾸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블의 은퇴를 가로막은 문제적 후임자는 바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었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개발과 발사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건 1996년부터다. 당시 첫 계획 때까지만 해도 발사 시기는 2007년이었다. 그런데 연이어 개발과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10년 넘게 발사 일정이 미뤄진 것이다.
먼저 거울 문제가 있었다. 제임스 웹은 허블보다 더 먼 초기 우주의 희미한 빛을 봐야 하는 미션 때문에 거대한 거울이 필요했다. 허블보다 약 5배 더 큰 거울이 필요했고, 이를 로켓에 실어야 했기에 거대한 거울을 접었다가 우주에서 다시 펴는 방식도 추가되었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금으로 코팅된 거울을 모두 펼친 모습
두 번째는 멀리 날아가야 하는 거리 문제였다. 앞서 허블은 지구 주변의 궤도를 돌았지만 제임스 웹은 달보다 더 멀리, 무려 150만km나 떨어진 ‘라그랑주 포인트’에 도달해야 했다. 또 발사 전 검토 과정에서 로켓이 발사할 때 강한 진동을 못 버틸 것이라는 치명적 문제가 확인되면서 보완 작업이 계속 진행됐다.
‘돈 먹는 하마’라는 치욕스러운 별명까지 붙었지만,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해야 하는 도전이었기에 천문학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2021년 12월 25일, 아리안 5 로켓에 실린 제임스 웹은 우주로 올라갔다. 인류의 꿈과 희망을 품고 맡은 바 임무를 착실히 수행할 일만 남았다.
크리스마스에 우주로 올라간 제임스 웹은 6개월 동안 관측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드디어 그 역사적 첫 관측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왔다. 이미 허블 덕분에 충분히 고화질의 선명한 우주를 보았다고 생각한 학자들은 제임스 웹의 임무에 그다지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웹은 허블이 할 수 없던 전혀 새로운 모습의 우주를 보여주었다.
제임스 웹으로 관측한 스테판의 오중주 은하 모습
제임스 웹은 가장 먼저 날치자리 방향으로 약 46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은하단 SMACS J0723.3-7327 쪽을 바라보며 찍은 첫 번째 딥 필드 이미지를 공개했다. 사실 이 사진은 아주 흥미롭다. 제임스 웹이 바라본 대상은 은하단 SMACS J0723.3-7327이지만, 사진에 담고자 한 주인공은 그 은하단보다 훨씬 먼 거리의 배경은하였다.
앞서 허블도 은하단 SMACS J0723.3-7327 쪽을 관측한 적이 있다. 하지만 허블이 관측한 사진에선 중력 렌즈 효과로 만들어진 배경은하의 허상 몇 개만 겨우 보일뿐이었다. 그런데 이 똑같은 곳을 제임스 웹이 바라본 결과 허블이 보지 못한 수많은 배경은하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무려 100억 년 전, 130억 년 전, 심지어 빅뱅 직후라 할 수 있는 135억 년 전의 빛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디어 우리는 제임스 웹과 함께 우주 탄생의 순간에 한 걸음 더 근접한 우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하는 것은 제임스 웹이 인류의 우주탐사 최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제임스 웹도 더 먼 미래에 진행될 진정한 차세대 우주 망원경을 위한 일종의 중간 개발 과정이다. 허블보다 약 2배 더 큰 눈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제임스 웹을 우주로 올려 보낸 천문학자들은 다시 그보다 2배 더 큰 새로운 우주 망원경을 준비하고 있다.
‘거대 자외선 광학 적외선 탐사선LUVOIR’이라는 엄청난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단순히 한 종류의 빛으로 우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외선에서 가시 광선 그리고 적외선에 걸쳐 폭넓은 파장 범위의 다양한 전자기파로 한꺼번에 우주를 관측하는 우주 망원경 계획이다. 주경의 크기는 제임스 웹의 2배 가까운 지름 10~15m에 달한다.
LUVOIR가 예정대로 제작되어 우주에 간다면 빅뱅 직후 최초의 별이 존재하기도 훨씬 전 초기 우주의 암흑시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수십 광년 먼 거리에 떨어진 외계 행성의 모습도 마치 태양계 행성을 바라보는 것처럼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별과 은하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은 어떠했는지, 다른 별 곁에도 지구처럼 푸른 녹음과 바다와 생명이 숨 쉬는 행성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웹이 보내준 이 놀라운 선물들을 확인하면서 우린 또 의구심이 들 것이다. 제임스 웹이 보여준 이 선명한 우주 모습이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우주탐사 기술의 최대치이지 않을까?
하지만 제임스 웹이 보여주었듯 다음 망원경은 진화한 모습으로 인류에게 깜짝 놀랄 선물을 할 것이다. 우린 매 순간의 놀라운 발견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가고 있는 매일의 찬란한 순간을 바로 제임스 웹과 함께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