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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8
가을날의 소풍
계절을 품은 명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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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황금빛이 물결치는 계절.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바람의 손을 잡고 멀리 가을 소풍을 떠난다. 환절기는 대자연의 놀라운 마법. 뜨거운 아스팔트가 하룻밤 사이 서늘해지고, 바닷물처럼 무겁고 습하던 공기는 몸을 바짝 말려 콧속으로 시원하게 미끄럼틀을 탄다. 가을은 잊고 살던 추억, 새로운 설렘, 익숙한 풍경이 주는 낯선 느낌이 소리 없이 자라나는 시간이다. 가을의 양쪽 주머니에는 찬란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 알록달록한 얼굴을 그린 여섯 점의 명화를 만나보자.
가을빛이 머무는 찰나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칸딘스키는 점, 선, 면, 색 등 회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를 조합해 인간의 감정과 영적 경험을 시각화했다. 강렬한 컬러, 기하학적 형태, 감정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을 소재로 한 풍경화부터 순수 추상의 세계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했다. 1908년에 완성한 ‘보트가 있는 가을 풍경’은 추상으로의 전환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배가 둥둥 떠 있는 일상 풍경을 추상적으로 재해석한 이 그림은 형태가 엄격하게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색색의 점과 선이 상쾌한 가을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 짙은 빨강, 따뜻한 오렌지, 청명한 블루 등 가을 색조의 팔레트를 활용했다. 이는 계절의 변화를 암시하고 향수를 자극해 관람자를 머나먼 풍경의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감정적·정서적으로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다.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색깔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빨강은 열정과 활력을 뜻하며, 파랑은 평온함과 내성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는 상반된 컬러가 상호작용하며 그림에 역동성을 더하고 복잡한 내면의 풍경을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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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호지킨스,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언덕’
프랜시스 호지킨스Frances Hodgkins, 1869~1947는 뉴질랜드 출신의 화가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두각을 드러내 영국과 프랑스로 일찍이 유학을 떠났다. 특히 파리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훗날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호지킨스는 주로 식물, 정물, 인물을 유화와 수채화로 그렸다.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형태로 보이는 것 너머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어릴 적 보고 자란 고향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느끼고 뉴질랜드 자연을 주제로 대표작을 많이 남겼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언덕’은 호지킨스의 독특한 화풍을 잘 보여주는 풍경화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언덕 형상은 지중해 풍경을 연상시키는데, 호지킨스가 유럽 여행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그림을 그렸으리라 추측하게 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언덕의 부드러운 곡선과 사이프러스 나무의 수직선이 대비되는 구도다. 호지킨스는 여기에 풍부한 녹색의 자연 색조와 파란색, 연갈색을 뒤섞어 생동감을 부여하고 느슨한 붓질로 인상주의 기법을 강조했다. 원근법이 힘을 잃은 평면적 구성은 칸딘스키 그림과 유사하지만, 색과 윤곽선 측면에서 두 그림은 전혀 다른 가을의 인상을 풍긴다.
도시에 가을이 내리면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Jean FranÇois Raffaëlli, 1850~1924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유명하다. 인상파 화가들과 긴밀하게 교류했지만, 그들의 스타일을 따르기보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교묘하게 뒤섞인 독창적인 표현법을 개발했다. 그는 주로 고독과 고난을 주제로 인간의 본질을 깊이 탐구했다. 도시의 일상과 파리 빈민층의 삶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다. 라파엘리가 활동한 19세기 후반 파리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무대였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서 라파엘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 관심을 두고, 그 모습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특히 빛과 색채의 사용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며 인물의 감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파리의 가을’은 가을날 파리의 도심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나무의 차분한 색조와 도시의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눈에 띄며, 금빛과 주황빛의 조화가 계절감을 풍부하게 느끼게 해준다. 작품에는 높은 건물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군중이 그려져 도시 생활의 분주함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는 단순한 도시 풍경화를 넘어 근대인의 삶과 일상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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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라파엘리, ‘파리의 가을’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이자 수채화 화가인 모리스 프렌더개스트Maurice Prendergast, 1858~1924는 라파엘리와 마찬가지로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특히 모네, 피사로, 르누아르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느꼈다.

미국에서 태어난 프렌더개스트는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지내며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 기법을 간직하면서도 고유한 색채감각과 기하학적인 패턴을 특징으로 한다. 알록달록 색채는 그림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며, 화려한 패턴과 질감이 작품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현실의 장면을 정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눈으로 감상하는 맛을 이끌어냈다.

프렌더개스트의 대표작 ‘가을’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활기 넘치게 표현한 그림이다. 특유의 밝고 대조적인 색채 사용과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알록달록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을의 풍성함을 담아내며, 빛과 그림자를 절묘하게 배치해 계절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프렌더개스트는 이 그림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인간의 여가 활동에 주목했다. 인물의 동적인 자세와 표정에서 행복한 감정을 발견하고,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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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프렌더개스트, ‘가을’
시를 잊은 그대에게
벨기에의 화가이자 조각가 릭 바우터스Rik Wouters, 1882~1916. 그는 일상의 풍경, 정물, 인물 등을 테마로 내면의 감정 상태에 집중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바우터스는 전쟁의 참혹함을 피부로 느끼고, 참전 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여러 질병과 싸워야 했다. 그에게 예술은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고 아픔을 승화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이는 바우터스의 작품에 자화상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아내 루이스를 포함해 가족과 친구를 모델로 삼고, 인상주의 기법을 적용해 인간의 생동감을 드러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강렬한 색채, 감정적인 표현, 눈부신 빛 사용 등. 독서하는 여성을 그린 ‘책을 읽는 여인’은 바우터스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압축된 대표작이다.

편안한 자세로 책 읽는 여성의 모습에 사적인 순간과 독서의 즐거움을 두루 담아냈다. 그는 차분하고 따뜻한 색채로 여성의 피부 톤과 복장, 주변 환경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여성의 얼굴에 햇빛이 부드럽게 반사되어 작품에 생명력과 깊이감을 더한다. 고독과 사색의 장면을 포착한 이 작품은 관람자가 여성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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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바우터스, ‘책을 읽는 여인’
알베르트 에델펠트Albert Edelfelt, 1854~1905는 핀란드의 대표 화가다. 청년 시절 파리로 유학해 인상주의 기법을 배우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해나갔다. 특히 독일에 2년간 머물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문화 예술을 경험했다. 에델펠트는 인상파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사실주의의 세밀한 묘사 기법을 적용했다. 빛과 색으로 자연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으며, 현장의 분위기와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주로 자연 풍경, 역사적인 장면, 일상생활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특히 핀란드의 전통문화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소파에서 책을 읽는 화가의 아내’는 평화롭고 사색적인 일상을 아름답게 구현한 그림이다.

에델펠트의 아내가 소파에 누워 독서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화면 중심에 여성을 배치하고 주변 장식과 구성을 세심하게 묘사해 그림 전반에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구의 곡선과 방의 기하학적 형태로 대비를 이뤄 따뜻한 느낌을 더하고, 방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광채로 여인의 얼굴과 책을 밝혔다. 바우터스와 에델펠트 모두 빛과 색의 효과로 일상을 아름다운 예술로 전환하는 마법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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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에델펠트, ‘소파에서 책을 읽는 화가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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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계절(가을) #취미/취향
글.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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