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익숙한 환경에서 몸이 벗어나는 여행이 필요하다.
풀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만났다면, 힐링이 필요하다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보자.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답이 내 안에서 떠오르는 통찰을 경험할 것이다.
통찰Insight이란 무엇인가?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해결 방식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종류의 사고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통찰이 필요하며 이 통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심지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자, 그렇다면 이 통찰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바로 ‘탈피’와 ‘새로움’이라고 하는 통찰의 정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참으로 재미있게도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벗어나려면 물리적으로도 벗어나야 하는 존재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수십, 수백 번 실험하고 연구해봐도 결과와 결론은 늘 이렇게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아무것도 없는 빈 방 안에 천장에 실처럼 얇은 줄 두 개가 매달려 있다. 학생들을 한 명씩 방에 들여보낸 뒤 이 두 줄을 이어보라고 한다. 사전에 학생들의 팔 길이를 다 측정해놓았고 이에 따라 두 줄의 거리를 벌려놓았기 때문에 당연히 학생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쪽 줄을 잡고 다른 쪽 줄을 향해 아무리 팔을 뻗어봐도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와 같은 인지심리학자가 “자, 이제 이 도구를 사용해보세요. 이 도구를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라고 약간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무언가 하나를 건네준다. 그 물건은 가위다. 이 어이없는 물건을 받아든 학생들은 난감해한다. 투덜거리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로 나온다. 그래도 잘 생각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연구자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거의 절대 다수가 이런 행동을 한다. 가위를 일상적으로 쓸 때처럼 잡고 가위 끝으로 줄을 잡아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가위의 날을 잘 갈아 놓았기 때문에 줄은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끝이 조금씩 잘려나가게 된다. 문제는 점점 더 꼬이며 학생들은 가위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를 이구동성으로 한다.
이번엔 학생들에게 ‘그럼 이걸로 문제를 해결해보라’고 한다. 두 번째로 건네주는 도구는 망치다. 그럼 학생들은 대부분 몇 분 안에 문제를 해결한다. 망치를 한쪽 줄에 묶고 던지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그럼 나머지 한쪽 줄을 붙잡고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쪽으로 다른 쪽 줄이 다가왔을 때 재빨리 낚아채 두 줄을 연결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제 이렇게 항변한다. “보세요. 처음부터 망치를 주셨으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잖아요!”라고. 그러면 연구자가 이렇게 되받아친다. “가위도 한쪽 줄 끝에 얼마든지 묶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학생들은 “아… 그렇네요”라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가위와 실의 관계를 ‘자른다’라고만 생각해서 가위도 한 쪽 끝에 묶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즉 통찰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에서 간단한 통찰조차도 너무나 어렵다는 걸 잘 보여주는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유명한 이른바 ‘두 줄 문제’다. 물론,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가위를 가지고도 망치처럼 한쪽 줄 끝에 묶게 만드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가위를 가지고 쩔쩔 매는 학생들 중 일부에게는 연구자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 이제 나가서 산책을 좀 해보세요. 머리도 식힐 겸”이라고 말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흥미롭게도 문제의 방을 나가서 캠퍼스를 10~20분 동안 산책한 학생들의 상당수는 연구자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방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교수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라면서 가위를 한쪽 줄 끝에 묶고 던져 시계추처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이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산책할 동안 방에 남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문제를 못 풀고 있는데 말이다. 시간과 노력을 더 쓰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이런 경험을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한다. 여권, 수첩, 금고 열쇠 등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집 안에서 찾으려고 애를 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찾는 걸 잠시 포기하고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러 나가면 ‘아, 거기를 확인해봐야겠네!’라는 느낌이 불현듯 떠오른다. 마찬가지의 효과인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대학의 교수 연구 업적과 재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교의 순위와
그 학교의 산책로 사이에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연구실과 도서관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산책이라는 짧은 여행을 통해
해결하는 여건이 제공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행은 필연적으로 사람을 평상시보다 더 걷게 만든다. 그런데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효과가 있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사람은 걸을 때 뇌에서 편도체Amygdala의 활동이 약화되고 해마Hippocampus의 활동은 강화된다. 재미있는 것은 편도체는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주로 담당하고 해마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걸으면서 사람은 불안을 해소(힐링)하고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신체적 상태로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인지심리학자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통찰이 필요한 문제를 만났을 때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고정관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그 고정관념을 떠올렸던 최초의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신체가 우선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두 발로 말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을 한 이후에야 인간은 두 번째 생각 즉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인류사의 수많은 통찰은 실험실과 공부방 혹은 사무실이 아닌 크고 작은 여행길에서 이루어졌다. 에디슨이 전구의 개발과정에서 플라멘트에 관한 발상은 소풍을 가서야 가능해졌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비롯한 우리 정신문화의 수많은 역작들은 그들이 귀양을 가서 시작하고 완성했다. 이 모든 통찰의 공통점이 무엇이겠는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이 고민을 하고 있는 장소를 벗어나 전혀 다른 장소에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행을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 순간,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노력과 시간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편한 마음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길 권한다. 의외로 효과가 크다는 걸 곧 느끼게 될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힐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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