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2. 09. 29
위기의 캐논을 구한
80대 CEO의 전략
The Sage Inve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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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은 파산하는 그날까지 최고 품질의 필름을 만들었지만, 세상은 그것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2012년 코닥의 몰락은 사진 장비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사진 장비 브랜드 캐논은 SLR EF 마운트 렌즈 라인업을 축소하기로 했다. 일본 공식 사이트에 올라가 있던 렌즈들 역시 단종 수순을 밟았다. 캐논 디지털 카메라의 찬란한 명성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보수적이거나 신중하거나
그러나 캐논은 궁지에 몰려 허둥지둥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011년부터 프린터를 핵심으로 한 오피스 사업은 이미 캐논을 떠받치는 근간이 되었다. 2020년 사업 재편 결과, 인쇄 사업이 캐논의 연간 총매출의 57.1%를 차지했고 영상 사업 비중은 17.1%로 나타났다. 의료 사업 매출 비중은 13.8%로 상승했다.

캐논의 3대 해외 생산기지 중 하나였던 중국 주하이 공장은 일명 ‘똑딱이’로 불린 콤팩트 카메라를 주로 생산해 왔었는데 2022년 1월부로 생산을 중단했고 공장 일부도 폐쇄되었다. 이것을 볼 때 캐논이 앞으로 SLR 카메라 사업을 더욱 축소할 것이 분명하다.

캐논 미타라이 후지오(Mitarai Fujio) 사장은 “1DX3가 캐논의 마지막 주력 SLR 카메라가 될 것이며, 향후 몇 년 동안 회사는 SLR 연구개발과 업데이트를 중단하고, 미러리스 카메라와 중저가 SLR 카메라만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이 날로 향상됨에 따라 일반 소비자는 더 이상 디지털카메라를 예전처럼 사지 않는다. 캐논뿐만 아니라 소니도 산하의 모든 SLR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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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카메라 시장은 전대미문의 침체를 겪었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2019년 대비 42% 줄어든 888만 6천 대에 불과했다.

그해는 바로 미러리스 카메라 판매량이 SLR 카메라를 대폭 앞선 해이기도 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SLR의 반사렌즈와 펜타 프리즘 등의 구조를 없애고, 전자식 뷰파인더(viewfinder)로 변경했는데, 부피가 더 작고 간편하기 때문에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작업을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휴대성과 간편함은 SLR 카메라의 명줄을 서서히 끊어놓았다. 일부 SLR 업무 체인을 끊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캐논의 자발적인 대응이었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 영역에서의 캐논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난이 엇갈리고 있었다.

캐논은 사진 마니아로부터 신제품 기술 교체에 매우 보수적인 회사로 인식되어 있다. 동일한 센서를 9년간 사용한 흑역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캐논의 신기술 개발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연구실에서는 향후 몇 년간의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캐논은 다른 제조사가 먼저 어떤 기술의 대중화에 성공한 다음에야 유사한, 혹은 더 발전된 기술을 탑재해 출시하곤 했다. 신기술 보급 시 시행착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이런 보수성에 대한 외부의 조롱에도 캐논은 개의치 않으며, 정가를 조금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미지 프로세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마니아들 사이에서 ‘캐논은 인물 사진, 소니는 풍경 사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미지 프로세서는 생동감 있게 인물을 표현하기 때문에 니콘 카메라보다 이미지가 더 부드럽다.

그러나 휴대폰 카메라의 발전 앞에서 이런 것들은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 경쟁사들은 무게 중심을 카메라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캐논 역시 앞장 서서 새로운 길을 닦기 시작했다.

2019년 후지는 헬스케어와 의료 장비 솔루션이라는 대형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20년 올림푸스는 카메라 사업을 매각하고 의료 기술 분야에 뛰어들어 소화기 내시경 및 의료 수술 장비를 취급하는 메드 테크 회사로 탈바꿈했다. 2021년 니콘은 높은 가격으로 미국 3D 프린트 스타트업 모프3D(Morf3D)를 인수하고 우주 항공 부품 사업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캐논 역시 동종 기업의 행보를 구경만 하지 않았다. 2013년에는 네덜란드의 디지털 인쇄업체 오세(OCE)를 인수해 상업용 인쇄 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 캐논은 영상 관리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일스톤 시스템(Milestone Systems)을 인수하고 2015년에는 감시카메라 제조사인 액시스(Axis), 2016년에는 도시바(TOSHIBA) 의료장비업체를 인수하면서 의료기기 업계에 진출했다. 그럼에도 캐논은 여전히 안갯속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후지오(Fujio) 호황’ 이론
캐논 내부에서는 줄곧 ‘후지오 호황’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 미타라이 후지오(Mitarai Fujio)가 회사를 이끌면 캐논에 다시 호황이 찾아올 거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미타라이 후지오가 두 번에 걸쳐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캐논이 존재할 수 있었다.

1995년 미타라이 후지오는 캐논의 6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대출 의존도가 35%에 달하는 회사였다. 그는 재빠르게 혼란을 수습했다. ‘손실은 죄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적자 부서를 과감하게 도려냈다. 또 복사기, 인쇄기, 카메라, 광학 장비의 4개 핵심 부서를 통합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기술부에 더 가볍고 얇은 렌즈와 배터리 개발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인 디지털 익서스(Digital IXUS)가 공개되면서 캐논 제국의 찬란한 막이 열렸다. 또한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캐논의 렌즈 교체형 디지털카메라는 18년 연속 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캐논은 큰 타격을 받았고, 미타라이 후지오는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그는 과학 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으로 새로운 성장 곡선을 모색했다. 2013년부터 캐논의 매출과 수익이 회복세로 돌아섰다. 2016년 거액으로 도시바의 의료 부문을 인수하면서 순이익이 하락했지만, 이듬해에는 60.6%나 증가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미 81세였던 미타라이 후지오는 은퇴 후 가족과 노후를 즐기려 했다. 그가 다시 위기에 빠진 캐논을 이끌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0년은 모든 디지털카메라 회사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기업에도 치명적이었다. 85세였던 미타라이 후지오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비슷한 나이대의 기업가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새로운 세계의 충격에 맞서야 했다.

그 해 캐논은 의료 사업을 재편하고 의료기기 시장에 주력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려고 했다.

세계 일류 수준의 의료장비 제조회사인 도시바의 사업부를 인수한 후, 미타라이 후지오가 의료 분야에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은 예상 밖의 결정이 아니다. 캐논은 뛰어난 사진 기술을 이용해 CT, MRI 촬영 및 영상 품질을 높여 이 둘의 조합으로 더욱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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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후지오 호황’ 효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캐논 그룹 매출액은 전년대비 11.2% 증가한 3조 5,133억 엔(약 34조 8천억원)이며, 순이익은 157.7%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의료 사업 매출액은 전년대비 10.2% 증가한 4,804억 엔을 달성했다.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캐논이 일본 정부의 의료기관 지원이라는 비즈니스 기회를 적시에 포착했고, 북미 시장 수요 회복과 함께 CT 장비 및 초음파 진단 장비의 판매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캐논은 세계 4위의 의료장비 제조업체로 성장했으며, 향후 의료사업 매출액은 그룹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방사선이든 초음파 진단 장비이든, 캐논이 현재 1군 기업의 수준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빅3 브랜드 지멘스, 필립스, GM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캐논이 이 분야에 진출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캐논의 의료사업이 어떻게 될지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캐논이 내부 혁신과 도시바의 유산에만 의존해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미타라이 후지오의 꿈은 우주항공 분야에도 걸쳐 있다. 그의 청사진 한 켠에는 높은 해상도로 정확성을 자랑하는 저궤도 위성을 띄우는 꿈이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하이퍼포토그래피 기술로 만든 저궤도 위성은 2017년에 발사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미타라이 후지오가 무대에 복귀한 그해, 캐논의 두 번째 저궤도 위성을 탑재한 로켓은 발사에 실패했다. 로켓이 2차 점화 과정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캐논 CE-SAT-1B를 비롯한 총 7개 위성이 소실됐다. 그 뒤로 캐논의 우주 사업은 더 큰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어쩌면 더 좋은 시기를 위해 놀라운 것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10년에 한 번씩 변한다’라는 말은 미타라이 후지오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새로 탄생하는 모든 조각은 변화의 서곡이 될 수 있다. 캐논은 여전히 교차로에 서서 방향을 결정할 또 다른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를 대신해 캐논에 영광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리더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출판사 샹제(商界) 편집부 중국 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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