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슬레와 모네의 그림은 겨울 농촌이 보여주는 전형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눈발과 뿌연 대기, 소복이 내려앉은 함박눈에 색채가 사라진 땅의 피부. 그러나 모든 겨울 풍경화가 무채색으로 일관되지 않는다. 다채로워 더욱 빛나는 설경도 있다. 먼저 러시아의 대표적 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1878~1927는 서리가 잔뜩 내린 어느 오후의 작은 마을을 선명한 빛깔로 묘사했다. 그는 ‘서리가 내린 몹시 추운 날Frosty Day’에 매서운 겨울날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친근하게 담아냈다. 경주용 썰매를 타고 달리는 일꾼과 그 뒤에 앉은 중산층 부부, 방한복을 입고 힘차게 빗질하는 청소부, 나뭇가지마다 솜사탕처럼 매달린 흰 눈과 러시아 전통 건축물….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서리가 내린 몹시 추운 날’
쿠스토디예프는 1905년 러시아혁명 당시 전체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생생한 캐리커처로 재현하곤 했다. ‘서리가 내린 몹시 추운 날’의 화면을 압도하는 붉은 태양은 그러한 화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러시아의 엄동설한에도 꿋꿋이 고개를 치켜들고 마을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햇살, 그 빛을 받은 풍광은 밝고 화사한 색채와 활기로 가득하다.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 행복, 즐거움, 조국의 평화를 바라는 염원이 겨울 풍경에 담겨 있다.
쿠스토디예프는 1905년 러시아혁명 당시 전체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생생한 캐리커처로 재현하곤 했다.
작품의 화면을 압도하는 붉은 태양은 그러한 화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눈 내린 풍경Landscape with Snow’도 알록달록한 컬러로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마 희끗희끗 눈 부스러기들이 없었다면 봄이나 가을에 더 가까운 풍경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림은 겨울이 거의 끝나가는 2월 중순에 그렸기 때문이다. 고흐는 파리 예술계에 환멸을 느끼고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1888년 아를Arles로 떠났다. 남부 도시로 요양하러 온 그는 기록적 한파로 혹독한 날씨를 견뎌내야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눈이 녹아가는 마을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그가 자살하기 2년 전에 완성한 이 그림은 고흐의 화풍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제작된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특히 이 그림은 고흐가 열렬히 수집한 일본 판화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하며, 짙은 녹색과 고동색 그러데이션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관습도 묻어난다. 톡톡 튀는 색감과 함께 화면을 역동적으로 구현하는 요소는 대각선 구도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 풍경화가 하늘을 파노라마로 넓게 조망한다면, 고흐는 자신이 서 있는 곳과 멀리 보이는 붉은색 지붕 오두막 사이의 지형에 더욱 집중했다.
관객의 시선은 한적한 길가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남자와 그 옆의 갈색 개에게로 향한다. 일반적으로 하늘은 이상, 땅은 현실의 메타포로 해석되곤 한다. 원대한 꿈을 품고 파리로 떠났다가 결국 아를로 돌아온 고흐는 이 작품에 어떤 심정을 녹여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