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3. 05. 02
봄의 초대로 떠난
낯선 땅으로의 여행
계절을 품은 명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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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행의 계절이다. 추운 겨울 동안 한껏 움츠러든 몸을 쭉 펴고 신발 끈을 동여맬 시간이다. 먼 옛날 화가들도 봄의 초대를 받아 낯선 땅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지금 여기, 6명의 화가가 그린 봄의 여행을 따라가보자.
반짝이는 항구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는 신인상파의 대표 화가다. 그는 인상파의 기법을 과학적으로 파악해 점묘로 작품을 완성했다. 인상파의 밝은 색채를 유산으로 이어받으면서 합리적 색채 이론을 응용해 더욱 빛나는 색감을 캔버스에 구현했다. 세상을 ‘점’으로 이해한 시냐크는 “분할, 이는 조화의 복잡한 체계이자 기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학”이며, “점이라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시냐크는 항해를 좋아해 1892년부터 작은 보트를 타고 프랑스부터 네덜란드, 콘스탄티노플까지 지중해 주변과 해안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행 중 발견한 여러 항구를 빠르고 생생하게 스케치하면서 다채로운 수채화를 그리고, 이후 대형 회화로 옮기곤 했다. 작업실에 안주하지 않고 활발하게 돌아다닌 만큼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기도 했다. 유화와 수채화뿐 아니라 에칭과 석판화도 남겼고, 펜과 잉크를 사용해 작은 색점이 가득한 잉크 스케치를 자주 그렸다.

말년의 시냐크는 프랑스 항구도시를 산책하면서 그곳의 풍경을 수채화 연작으로 제작했다. ‘콩카르노의 항구’는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자세히 들여다본 화면에는 알록달록한 점이 하늘과 바다, 멀고 가까운 보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맑고 청량한 푸른 점, 온기가 느껴지는 붉고 노란 점, 푸른 기운이 가득한 녹색 점 등 시냐크는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톡톡 쌓으면서 현장을 사실적으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느낀 감정과 기분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달하려 애썼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에는 마치 바닷가의 반짝이는 윤슬처럼 빛나는 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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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부댕의 ‘항구로 들어오는 호위함’
외젠 부댕Eugène Boudin, 1824~1898야외에서 그림을 사생한 선구적 프랑스 화가로 유명하다. 특히 바다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대상을 그리는 데 탁월했다. 1853년부터는 대서양 연안의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 뒷면에 그날의 날씨‧빛‧시간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기록하곤 했다.

1860년대 초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부댕은 바닷가 장면을 모티브로 즐겨 그렸다. 아마 여기에는 선원의 아들로 태어난 유전자가 발현된 듯하다. 부댕은 해안가의 웅장한 호텔과 카지노가 늘어선 트루빌 광경은 물론, 도시의 심장부인 항구 풍경을 자주 그렸다. ‘항구로 들어오는 호위함’은 한낮의 바닷가 정경을 포착한 작품이다. 드넓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호위함과 4인용 보트의 스케일 대비가 눈에 띈다. 일견 한적해 보이는 이 그림에는 19세기 선박 기술의 발전과 여가의 유행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함께 녹아 있다.
센강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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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신인상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다. 그의 기념비적 대작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는 오랜 세월 미술사 명작으로 회자될 만큼 특별함이 담겨 있다. 작품에는 활달한 선이나 꿈틀대는 붓 자국, 혹은 넓은 색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화라기 보다는 작은 색종이를 붙여놓은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수없이 많은 작은 점이 한가득 찍혀 있다. 쇠라는 오직 색점만을 찍어 이 그림을 그린 것.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내 수많은 점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만 눈에 들어온다.

쇠라는 짧은 생애 동안 소수의 대작에 온 힘을 기울였는데, 이 그림은 2년에 걸쳐 제작했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1년간 수십 장의 스케치를 준비했다. 데생에 전념하되, 윤곽선이 아니라 명암의 대비로 형태를 포착하는 독특한 수법을 몸에 익혔다. 이 작품은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풍광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사실주의 요소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화면은 순수한 빛과 색의 물결, 빈틈없는 질서를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대상은 시간이 멈춘 듯, 꿈속에 빠져 있는 듯 움직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풍경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엄격하게 배치되어 있고, 옆모습 혹은 앞모습의 인물 40명은 극도로 단순화되어 고대 조각처럼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1886년 인상파의 마지막 전람회인 8회 인상파전에 초대 출품되어 ‘신인상파’의 탄생을 선언했다. 무엇보다 쇠라의 위대함은 이성과 감성, 미술과 과학을 훌륭하게 융화시킨 독특한 재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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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스네르의 센강’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인물 표현이나 자유로운 동작에 관심을 두었다. 이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 색채 분할을 실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르누아르는 화가로 데뷔하기 전, 도자기에 그림을 새겨넣는 장인이었다. 이러한 경력은 그의 그림에도 잘 녹아있다. 그는 도자기 질감처럼 매끄러우면서도 표정이 풍부한 인물을 많이 그렸다.

르누아르는 언제나 사람들의 고운 얼굴에서 행복을 찾았다. 수줍은 젊은 여인부터 원숙한 매력이 피어나는 중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품위 있게 표현했다. 다정다감한 여인의 눈웃음, 하늘거리는 드레스, 윤기 나는 금발과 뽀얗고 흰 살결을 묘사하는 르누아르의 솜씨는 그 어느 화가보다 뛰어났다.

그는 센강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을 주로 묘사했다. 휴일 오후 친한 벗들과 함께 술을 즐기며 예술과 사랑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아스네르의 센강’은 프랑스 센강에서 한적하게 보트를 타는 두 여인을 그렸다. 자칫 무겁고 음울할 수 있는 푸른 강물에 붉은색과 갈색을 더해 따스한 느낌으로 전환을 꾀했다. 르누아르는 “삶은 끝없는 파티요, 그때는 세상이 웃는 법을 알았다”고 회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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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는 언제나 사람들의 고운 얼굴에서 행복을 찾았다.
수줍은 젊은 여인부터 원숙한 매력이 피어나는 중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품위 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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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프랑스의 대표적 인상파 화가다. 그는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팔레트에 물감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 직접 칠하는 인상주의 양식을 처음 개발했다. 모네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빛과 색의 조화를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고, 이를 연작으로 실현해냈다. 모네는 도구를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거리와 카바레, 센강의 풍경,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쉬는 사람들을 직접 화폭에 담았다.

빛의 순간적 움직임뿐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삶의 단면을 그려냈는데, 모네는 그것이 그림의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는 1883년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수련 연못 위의 다리’를 포함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간 100점이 넘는 ‘수련’을 그렸다.

심지어 백내장에 걸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다. 훗날 세잔은 모네를 떠올리며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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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못 위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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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이탈리아 정원 풍경’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비엔나 교외의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진해 어릴 적부터 매우 궁핍한 삶을 살았고, 14세에는 학교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때부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천부적 그림 재능을 발휘했다. 클림트는 정치 현실을 비난하는 그림을 담벼락에 그려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을 겪었는데, 이 위험한 장난을 계기 삼아 그는 예술적 재능을 조금씩 꽃피우게 되었다.

초기에는 관습적 주제를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양식으로 그려낸 벽화를 남겼고, 이후 자연주의에서 멀어져 평면적인 색채 모자이크 작품을 제작했다. ‘이탈리아 정원 풍경’은 말년에 정원의 아름다운 현장을 재현한 작품이다.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유려한 붓질이 돋보인다. 클림트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비엔나에서 많은 여성을 사귀었는데, 그 덕에 그의 그림에는 특유의 장식성과 함께 짙은 에로티시즘이 발현된다.

붉은색‧분홍색‧보라색 꽃이 만발한 풍경은 향락적이고 관능적이며, 퇴폐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또렷하고 선명한 색채 덕분에 짙은 꽃향기가 캔버스 너머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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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아트인컬처>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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