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의 확산과 다양화로 그에 따른 보안과 규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섭테크Suptech는 AI, 빅데이터, 음성인식 기술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관리·감독 시스템으로 안전한 디지털 금융 보안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이 처음 탄생한 이래 화폐, 음원, 그림, 건물, 증권 등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자산이 디지털 형태로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2018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2021년 세상에 나온 NFT대체 불가능 토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자산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STO증권형 토큰, DABS디지털 수익증권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이고 실행력을 갖춘 아이디어 역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2022년 3월 기준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은 1조 8,020억 달러(한화 약 2,341조 6,990억 원)에 달한다. 문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이 커지는 속도나 규모에 비해 그에 따른 관리·감독의 수준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에 최근 기술을 활용한 금융감독 업무를 뜻하는 ‘섭테크Suptech, Supervision+Tech’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섭테크란 감독Supervis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기술을 활용해 금융을 관리·감독하는 것을 말한다. 섭테크에는 주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음성인식STT 기술 등이 활용된다. 가령 은행 IT 시스템으로부터 가져온 데이터와 메신저 봇Messenger Bot, 일명 챗봇을 통해 모은 데이터 등을 빅데이터로 만든 다음 인공지능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 자산 관리에 다시 활용하는 식이다.
금융사의 불완전 판매 사고가 터졌을 때 녹취록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거나, 금융사가 제출한 업무 보고서 등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도 섭테크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섭테크가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적 요인이다. 금융의 디지털화로 금융 거래의 속도는 현저히 빨라졌다. 문제는 기존 아날로그 형태의 금융감독 시스템으로는 적시에 대응하는 게 어렵다는 것. 예컨대 금융 거래 속도가 빨라져 단위시간당 거래가 이전보다 10배 이상으로 늘면 아날로그 방법으로는 충분히 방어할 수가 없다. 이에 자동화된 IT·디지털 기술인 섭테크가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감독 비용, 즉 가성비의 문제다. 현재 금융권은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 이용 내역 등 금융 데이터의 주인을 금융사가 아니라 개인으로 정의하는 개념인 ‘마이데이터’ 경쟁이 치열하다. 이로 인해 다양한 개인 맞춤형·융합형 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이를 감시·감독할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금융감독원은 섭테크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기계가 감별해낼 수 없는 판단 영역에 집중한다면 전체적인 금융감독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내비쳤다.
은행, 증권, 보험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수집해 사용자가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마이데이터’ 사업의 활성화도 섭테크의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섭테크의 관심은 뜨겁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인공지능의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계 학습 기능 등을 이용해 증권사 및 운용사의 위법행위 적발 비율을 높였고,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머신 러닝을 이용해 투자자문사의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Misselling 가능성까지 예측하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고 하는 싱가포르 통화청MAS도 섭테크에 대해 적극적이다. 자연어 처리와 머신 러닝을 활용해 자금 세탁 및 테러 자금 연계 가능성이 높은 거래의 감시 기능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AI의 머신 러닝 기능 등을 이용하면 증권사 및 운용사의 위법행위 적발, 자금 세탁 가능성까지 감시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금융감독원이 AI를 활용한 감독과 검사 업무를 적극 추진하면서 섭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 도입한 섭테크 서비스는 미국, 영국 등에서도 활발한 투자·운용 분야다. 지금은 사모펀드 심사 때 제출한 보고서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1차 검토하는 식으로 약관 심사 업무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향후에는 민원이 가장 많은 보험 분야에 활용해 텔레마케팅의 불완전 판매 식별 시스템, 대부업 상시 감시 시스템, 인터넷 불법 금융 광고 감시 시스템 구축, 보이스 피싱 적출 등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섭테크의 국내 안착의 경우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이는 곧 인공지능의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첫째, 정보 및 데이터를 처리할 때의 불투명성이다.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해당 기술인 인공지능의 특성상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고, 머신 러닝 과정에서도 정보 처리량이 제한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개인정보 보호 문제다. 정보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섭테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를 처리하는 기업들에 정보 및 데이터가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셋째, 해킹 등 사이버 리스크의 증가로 시스템 조작과 삭제, 네트워크 붕괴 등의 우려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는 인력 문제다. 섭테크 담당 인력은 감독 기능에 대한 이해는 물론 데이터와 컴퓨터 공학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이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섭테크의 한계를 지적하거나 기술 자체를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디지털 금융시장에 대해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금융의 진화로 디지털 자산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마이데이터 시대가 본격화되고, 개인정보 보호와 금융 보안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만큼 그에 따른 시스템 고도화도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섭테크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효율성을 더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방법이 바로 레그테크RegTech다. 섭테크가 감독 당국이 행하는 사후 감독이라면, 레그테크는 민간 업체가 하는 사전 준법 여부 체크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레그테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뤄진다면 섭테크의 가성비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민간 업체와의 업무 협력까지 자연스럽게 이뤄져 필요한 기술과 시스템 및 인력 확보 등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프랑스의 보험 스타트업 시프트 테크놀로지는 보험 사기 적발에 레그테크 시스템인 ‘포스’를 활용하고 있다. 7,500만 건의 청구 중 75%의 확률로 보험 사기를 밝혀냈다.
금융 디지털화가 가속화될수록 섭테크와 레그테크의 긍정적 효과는 명확하다. 금융사의 규제 준수 비용과 위반 리스크를 줄이고, 금융 소비자를 사기와 해킹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규제 디지털화를 통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규제 가이드 개선 등 효율적인 금융감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는 섭테크와 레그테크 모두 초기여서 금융감독의 효율화를 돕는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만, 금융의 디지털화가 빨라지고 보안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