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 한 장으로 점심 후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가장 대중적인 음식의 평균 가격은 냉면 1만269원, 짜장면 6,223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전후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점심값이 부담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물가에 고금리·고부채·고환율이 더해지는 소위 4고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는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나갈 것이다.
외식 물가의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진 요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가 급등을 꼽을 수 있다.
런치플레이션을 촉발한 요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육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곡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축산물 가격이 상승한 것과 식물성 단백질, 바이오 디젤, 반려동물 사료 등의 새로운 곡물 수요 상승이 지속적으로 진행돼오던 구조적 수급의 불균형 현상을 심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점심값이 부담인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했고, 식당에서 먹기보다 가성비 좋은 밀키트를 이용하는 모습도 늘고 있다.
여기에 전월세가 급등과 고환율 추세가 더해지면서 월급 빼고 다 오르는 IMF 못지않은 고난의 시기가 도래하는 중이다. 한동안 젊은 층의 트렌드로 각광받던 YOLO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이니 맘껏 즐기자나 FLEX돈을 쓰며 지르고 과시하다 현상은 이제 보기 힘들게 되었다. 절약이 생존의 길이고, 어떻게 절약하느냐 하는 방법론과 아이디어가 절실한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미국 식품 회사들에서 본 글로벌 투자’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식품 밸류 체인Value Chain, 가치사슬 내 여러 기업의 최근 실적 발표를 보면 미국 식품 인플레이션은 앞으로도 쉽게 진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엔 외식하고 싶은 식당을 고르는 기준 중 첫 번째로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인가’를 꼽는다. 가족 모임에서도 정보력이 뛰어난 MZ세대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대세가 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매장 내 인테리어에 변화가 적고 비슷한 메뉴만 고수하다 보면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주말이면 연인이나 가족 단위 방문객으로 북적였던 패밀리 레스토랑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여기에는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혼밥과 혼술의 유행도 영향을 미쳤다.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더 따지는 요즘 세대는 기왕 비싼 돈 들여 먹을 거라면 SNS상에서 유명한 곳,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곳,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원한다. 그리고 이동의 불편함, 기다리는 수고로움이 따를지라도 선택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잘나가던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이 종래의 오리지널 매장을 대폭 축소하고 특정 메뉴만 업그레이드 하거나 프리미엄 매장으로 재오픈해 인기를 얻은 것도 이런 트렌드의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런치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주력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신개념의 VIP 마케팅도 떠오르고 있다. 본래 VIP란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어이지만, 신개념 마케팅에서의 VIP는 ‘Visual인증샷을 부르는, Individual개인 맞춤형, Premier고품격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평소에는 런치플레이션에 맞서 치열하게 극한의 가성비를 추구하지만, 때로는 매력적인 레스토랑에서 나만의 개성을 찾고 억눌린 감성을 맘껏 폭발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