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 LIFESTYLE
2023. 08. 01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영감의 바다
계절을 품은 명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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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우리의 공감각을 한껏 끌어올리는 낭만적 배경이자,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모든 존재가 물에서 탄생했듯 수십억 년의 시간을 품은 바다는 생명의 시원始原이요, 인류의 보고다. 천의 얼굴을 지닌 바다는 오래전부터 예술가의 절친한 ‘뮤즈’였다. 여행지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순간부터 사색의 시간까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 경계의 수면 위로 흐르는 영감의 바다.
인간과 자연
영국 정통 수채화파의 대표 기수인 데이비드 콕스David Cox, 1783~1859는 자연주의적이며 서정적 분위기의 풍경 그림을 다수 그렸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 너머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해 야외 사생을 즐겼던 콕스는 주로 시골이나 해안가를 대상으로 그렸다. 특히 사생 현장의 빛과 대기 묘사에 탁월했다. 영국 웨일스의 해변 마을 릴Rhyl을 그린 ‘릴 모래사장’은 그의 손 기술이 두드러지는 대표작이다. 드넓은 모래사장과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어부, 평온하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콕스의 섬세하고 능숙한 붓놀림은 모래의 질감, 파도의 움직임,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대기 상태를 밀도 높게 포착하고 있다. 콕스는 젊은 시절에도 종종 웨일스를 여행했지만, 노년이 되어 버밍엄 인근에 정착한 이후부터는 릴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격동적이지는 않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바닷가, 점처럼 표현한 인물들. 71세의 노년 콕스가 바라본 모래사장은 인생을 하나의 화폭에 압축한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먼지처럼 사라질 인간의 짧은 생과 이와 무관하게 무한히 펼쳐지는 자연의 힘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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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의 ‘앉은 여인, 열린 창문을 등지고’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색과 형태를 철저하게 단순화시켜 화면에서 불필요한 설명을 생략했다. 마티스에게 그림이란 현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평면 위에 선과 색채를 리드미컬하게 배치하는 놀이였다. 곡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마티스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색채화가로서 천부적 재질을 드러냈다. 이후 장식적이고 현란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고,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삼은 평면적 구성과 순수한 색채를 나열하는 독특한 화풍을 창조해냈다.

청년기의 마티스는 지중해의 빛에 푹 빠져 있었는데, 주로 프랑스 니스Nice에 머물며 해안가 풍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현하곤 했다. ‘앉은 여인, 열린 창문을 등지고’ 역시 니스의 바닷가를 담은 작품으로, 마티스의 ‘니스 시대’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짙푸른 빛, 부두 맞은편에 늘어선 야자수와 밤하늘의 별처럼 떠 있는 돛단배가 아름다운 바캉스 풍경을 완성한다. 이 그림의 절정을 이루는 요소는 고아하게 포즈를 취한 여성과 동양풍 무늬로 장식된 소파. 창문을 기준으로 안과 밖, 붉은색과 푸른색, 인간과 자연이 대조되는 풍경은 마티스의 수준 높은 미감을 증명한다.
눈부신 수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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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생트마리드라메르의 바다 풍경’
후기인상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비극적 생애와 예술 세계는 하나의 ‘신화’에 가까운 드라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북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젊은 시절 화랑 점원으로 일하거나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지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이 화가였다. 붓을 들어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세찬 감정을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고흐는 이 세상의 모든 형태에 생명감을 불어넣으려는 신비로운 신앙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가 붓 자국에 남긴 움직임과 표정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명감으로 가득차 있다. 1888년 자신만의 새로운 그림을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아를Arles 로 건너갔다. 태양 광선이 넘쳐흐르는 아를에 머무는 15개월 동안 선명한 색채의 대비와 격정적인 붓놀림을 보여주는 그림 200여 점을 미친 듯이 쏟아냈는데,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명작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중 ‘생트마리드라메르의 바다 풍경’은 흐린 하늘 아래 요동치는 바다 풍경을 활기 넘치게 묘사한 작품이다. 대담하고 두꺼운 붓끝에서 탄생한 바다와 하늘의 변화무쌍한 얼굴. 그는 이곳에서 동생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부쳤다. “지중해는 고등어 색깔을 띠고 있어. 우리가 그곳에서 파란색을 인지하는 순간, 1초 만에 분홍색이나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이지. 하늘의 구름은 코발트블루보다 더 깊은 파란색을 간직하고, 푸른 은하수에서 별들은 밝게 빛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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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의 ‘태양’
우리에겐 ‘절규하는 사람’으로 더욱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불안과 공포로 얼룩진 광기의 걸작을 탄생시킨 대가다. 뭉크는 노르웨이의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누나와 세 동생이 차례로 병에 걸려 죽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뭉크 역시 평생을 신경 쇠약증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 “나는 숨 쉬고, 느끼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라며 제 심정을 털어놓은 뭉크는 평생 자신의 병적 근심과 심리적 긴장,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비극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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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 쉬고, 느끼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라며
제 심정을 털어놓은 뭉크는 평생 자신의 병적 근심과 심리적 긴장,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비극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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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우울감이 소용돌이치는 그의 그림 대부분과 다르게 ‘태양’은 밝고 희망찬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 설치된 이 그림은 가로 약 8m에 달하는 초대형 벽화다. 계곡 사이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수평선과 대칭 구조의 한가운데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빛. 청량한 해수면 위로 고개를 치켜든 태양은 하늘에서 바다, 바다에서 육지로 그 광선을 영원까지 뻗어나간다. 마치 험난한 인생에도 어딘가에는 우리의 불행을 녹여줄 강한 빛줄기가 숨어 있다는 듯이.
푸르른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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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드랭의 ‘돛 말리기’
강렬한 색채의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1880~1954은 파리의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마티스와 가까이 교류하며 1905년부터 프랑스 남부의 항구 마을 콜리우르Colioure에 머물렀다.

이 지역 특유의 밝은 빛과 색채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그는 특히 콜리우르 어촌을 배경으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중 ‘돛 말리기’는 사실적인 세밀 묘사 대신 간결하게 표현한 인물, 거칠게 그은 붓질, 화면을 빈틈없이 채운 물감, 강렬한 원색 등 야수주의 특유의 에너지가 전면에 드러난다.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 격인 범선의 돛은 과감하게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복잡함을 덜어내고, 활짝 열린 창문처럼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도록 연출했다. 수면과 길바닥에 쓰인 사각형 같은 거친 터치는 당시 마티스와 공동 제작하고 있던 신인상파 시냐크Signac의 점묘법에서 영감을 받아 시도한 포인트.

드랭은 “빛나는 황금빛은 모든 그림자를 지워버리고 말았다. 모든 그림자는 밝음과 빛남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색 계열의 선연한 컬러와 대담하고 다이내믹한 터치. 드랭은 푸른 바다에서도 찬란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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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의 ‘깃발을 장식한 배들’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는 여행지를 배경으로 다수의 그림과 판화를 남겼다. 어린아이가 그린듯 오밀조밀한 형상과 톡톡 튀는 색감이 뒤피의 트레이드 마크다. 마티스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그의 그림은 경쾌한 붓질과 시원한 구성이 시각적 운율을 형성하고,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경쾌하게 만든다. 뒤피는 특히 파란색을 사용하는 데 탁월했다.

뒤피는 “파란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유일한 색이다. 노란색은 탁해지면 검은색이 되고, 빨간색은 고동색이 되거나 분홍색으로 변해버리지만, 파란색만은 언제나 파란색으로 남아 있다”며 파란색을 찬양했다. ‘깃발을 장식한 배들’에는 그의 블루 미학이 한 지면에 압축되어 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 먼 바다와 가까운 물낯, 심해와 윤슬,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며 출렁이는 물결까지…. 명도와 채도에 따라 수백 가지 성격을 지닌 파랑의 스펙트럼이 뒤피의 여름 바다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제 고유의 색을 잃지 않은 채 그림 너머로 끝없이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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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취미/취향 #VIP #계절
글. 이현(<아트인컬처>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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