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부터 온라인까지
경계를 초월한 수집의 세계
최근 미술계는 전통 회화부터 공예, 조각, 팝아트는 물론 비주류 아티스트의 신작, 웹툰 기반의 회화, 해외 갤러리 초청작, 셀러브리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이 쉽게 작품을 만들어 공유하거나 전시를 열면서 NFT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중이다. 경계가 사라진 수집의 세계를 소개한다.
시대를 초월해 고전이라 칭송받는 명작은 과거 누군가의 수집품이다. 수집가, 일명 ‘컬렉터Collector’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 명작은 대부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컬렉터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예술을 즐기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명작을 세상과 소통시킨다.
누구나 수집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은 돌멩이부터 우표, 서적, 엽서, LP 등에 이르기까지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수집은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수집 대상과 방법을 고민하고, 꼼꼼하게 정보를 탐색해야 한다. 심지어 수집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수집한 물건은 신경 쓰지 않으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컬렉터의 역량은 여기에서 나타난다. 컬렉션을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하느냐는 정보와 학습이 필요하다.
‘프리즈 서울 2022’의 성공적 개최로 전 세계 컬렉터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컬렉터’는 흔히 미술 분야를 지칭한다. 단순히 모으는 개념이 아니라 시장과 투자 관점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예술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의미까지 내포하기 때문이다. 컬렉터는 대부분 아주 작은 미술품 하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이어가는데, 개인적 성향에 따라 미술품의 장르와 시대, 표현 방식 등 일관된 컬렉션을 추구한다.
지난 2022년 세계적 아트 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된 이후 전 세계 아트 컬렉터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 미술이 ‘아시아 미술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히 미술 수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피카소나 반 고흐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이 아닌, 수년 전 아시아 미술 시장의 정점이던 홍콩처럼 동시대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 해외 갤러리들이 앞다퉈 서울에 지점을 오픈하며 한남동과 청담동 지역을 필두로 한 새로운 갤러리 지형도가 펼쳐지고 있다. 2022년 한 해 한국의 미술 시장은 그 규모가 1조 원에 달했다.
미술 컬렉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전문 컬렉터 양성으로 이어져 세계적 미술품 경매 회사 소더비가 운영하는 예술경영대학 소더비 인스티튜트 코리아는 프리즈 서울과 협업해 전문 컬렉터 양성 과정을 오픈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미술 플랫폼과 에디션 작품 시장에는 40대 미만 젊은 컬렉터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유명한 사람이 아닌,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작가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 해외 신진 작가나 한국 대표 작가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술 시장 과열로 일부 작가의 작품 가격이 단기간에 천정부지로 오르자 미술품을 단순 투자 대상으로 보는 현상에 대한 경각심의 목소리도 커졌다. 작품의 인기나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컬렉터로서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고, 이런 노력이 결국 시장을 크게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표적 컬렉터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현대미술 후원자로 꼽히는 세르게이 슈킨Sergei Shchukin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앙리 마티스의 미술이 너무 어려워 그의 작품을 집에 가져다두고 몇 달이고 작품을 감상했다”고 밝혔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 좋은 작품과 친숙해지기 위한 컬렉터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 앙리 마티스의 ‘춤 II’는 그의 후원자 세르게이 슈킨의 의뢰로 탄생한 작품이다. 파랑과 초록, 주황의 삼원색으로 입체감을 살린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2. 세르게이 슈킨의 초상화. 슈킨은 마티스를 가장 동시대적 작가라고 생각하고 개인적 취향을 넘어 일종의 사명감으로 1908년부터 1913년까지 그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사들였다.
미술 컬렉터라고 할 때 그림 외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대 전후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컬렉터 주세페 판차Giuseppe Panza는 자연의 빛, 방의 면적도 수집 대상으로 봤다. 최근 국내 수집 트렌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K-팝을 중심으로 한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대가는 물론, 젊은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BTS 리더 RM이 여러 해외 뮤지엄의 홍보대사로 초청받고, 글로벌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Art Basel과의 인터넷 방송에서 컬렉터로서 삶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전파를 타면서 국내 작가들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작품 트렌드 또한 변화시켰다. 새로운 컬렉터들은 ‘판화’라고 부르는 한정판 프린트 또는 아트 토이Art Toy로 제작되는 에디션 시장에 열광했다. 작가의 오리지널Original 작품은 전 세계에 오직 단 한 점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에디션 작품은 더 많은 이가 해당 작가의 인기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소장할 수 있게 한다. 또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 특성상 한정적 숫자로 제작되기에 인기 작가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미술 시장의 온라인화 역시 눈에 띄는 변화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 컬렉터들은 무려 190여 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온라인 검색 플랫폼 ‘아트시Artsy’, 세계 최대 미술 시장 플랫폼 ‘아트넷Artnet’ 등을 통해 미술작품을 구매했다.
기존에는 미술관에 직접 찾아가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했다면, 지금은 비대면으로 ‘아트시’ 같은 온라인 미술 검색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도 가능하다.
또 이들은 미술 잡지에서 인터뷰나 철학, 전시 비평을 찾아보던 예전과 달리 소셜 미디어에서 작가의 작업실과 명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이미지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접했다. 좋아하는 작가나 갤러리 종사자Gallerist들을 팔로우하고, DM이나 댓글을 통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팔로워들과 함께 각국의 아트 페어를 방문하며 신규 작가를 발굴하거나 작품을 비평하는 것도 흔해졌다.
2021년 3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NFT가 6,930만 달러에 낙찰된 이후 미술계의 NFT에 대한 관심은 한때 자취를 감추었다가 지난해 7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NFT가 블록체인에 최초로 입성하면서 주요 미술관들이 NFT를 소장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