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 삶의 지혜,
인생의 나침반이 되다
시대를 초월하며 인류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고전은 변화하는 세상 속을 제대로 항해할 수 있게 하는 나침반과 같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긴 여정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어보자.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도시에 역병이 돌아 공포에 사로잡힌 시민들이 왕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대사회에서는 역병이나 재난을 누군가가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여겼다. 테바이의 역병은 전임 왕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신탁이 내려지고, 오이디푸스는 그 범인을 찾아내 이 땅에는 발도 못 붙이게 할 뿐 아니라 대대손손 재앙을 겪게 하리라고 맹세했다.
생각해보자.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했다면, 그런 일을 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는 일을 다름 아닌 본인이 했다면 어떨까?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인들>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을 모르고 죽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잔혹하고 끔찍한 일들이 광기 혹은 무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런 끔찍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끔찍한 행동은 늘 주인공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일어난다. 악의 근원은 ‘모름’에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길목에서 만난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을 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빌려 비밀스럽게 알려준 가르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스핑크스는 ‘묶는 자’라는 뜻이다. 태양이 사계절을 거치면서 지나가는 하늘의 별자리를 합쳐놓은 상징이다.
태양이 사계절을 통과하면서 지상 풍경을 바꾸듯 인간은 3개의 시간을 산다. 인생의 오전에는 기어다니는 모습으로, 한낮에는 두 발로 우뚝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해가 저무는 저녁 시간에는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으로. 그 각각의 시간은 우리에게 다른 관점과 태도를 요구한다.
인생의 아침에는 땅을 짚고 일어서 자신을 키워준 부모나 세상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어야 하고, 두 발로 걸으면서 똑바로 앞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인생의 저녁이 되면 오래전 자신을 먹이고 키워준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그 땅에 의지해 걷는다. 땅에서 왔으므로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그동안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해준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은 홀로 선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보이지 않는 다른 생명과 연결된 존재이며, 시간이 다하면 그 큰 생명과 하나 됨을 아는 것이 인생의 저녁 시간에 배워야 할 지혜다. 이렇게 세 종류의 시간을 삶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된다.
고대 그리스인은 ‘오만함’을 경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웅적인 사람이 그의 결함 때문에 운명적 곤경에 처하는 이야기를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그 결함이 바로 오만이다. 탁월함은 오만을 부르기 쉽고, 오만은 몰락을 부른다. 하지만 비극은 그 몰락 이후에 대해서도 길을 터놓는다. 오이디푸스는 왕좌에서 내려와 떠도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오랜 방랑이 그를 현자로 만들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은 실제로 아테네에 역병이 돌고 난 이후에 쓴 작품이다. 그 직전의 그리스는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시민들과 논쟁을 이끌었고, 소피스트들이 활동했으며, 민주주의가 꽃피었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전쟁과 역병의 그림자는 무지로 인한 운명의 가혹함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 파르나소스산에 자리한 델포이의 고대 유적, 아폴로 신전의 원형
소포클레스는 불안과 혼란의 시대에 오이디푸스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전한다.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전을 경멸하면서 오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불행한 운명이 그를 사로잡으리라. 만일 그가 올바르게 이익을 취하지 않고, 부정한 행동을 삼가지 않으며, 신성한 것에 더러운 손을 대고자 한다면 누가 신의 화살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하겠는가.”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이제는 모래바람 속에 희미해진 신화로 남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