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찾아온 무더위에 선선한 바람, 상쾌한 공기, 청명한 하늘이 간절해진다. ‘오로라’라는 아름다움으로 뭉친 땅, 북유럽의 네 도시를 여행하는 법.
피오르의 왕을 알현하다,
노르웨이 오슬로 & 베르겐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두 번째로 낮은 나라다. 대지의 여백이 주는 여유,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흐르는 땅. 무려 45만여 개에 달하는 호수, 드라마틱한 오로라와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협만, 피오르 앞에서 자연의 경이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이 인생 여행지로 꼽는 노르웨이의 관문은 수도 오슬로다.
노르웨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 여행지 중 하나인 송네 피오르는 오슬로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당도할 수 있다.
노르드마르카는 오슬로 북쪽과 오플란주에 걸친 삼림지역으로, 서울의 4분의 3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하는 자연보호구역이다. 북쪽을 뜻하는 ‘노르드’와 숲을 뜻하는 ‘마르카’를 이름으로 사용한 곳답게 웅장한 침엽수림과 그 안에 둥지를 튼 여우, 사슴, 비버 같은 동물들이 자연의 야생성을 지키고 있다. 마리달 호수를 비롯한 10여 개의 맑고 청청한 호수와 그 주변은 카야킹‧낚시‧수영‧캠핑 등 아웃도어 액티비티의 베이스캠프로, 오슬로 사람들은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등산‧산책‧스키 등으로 계절의 낙을 즐긴다.
노르웨이의 정수, 피오르까지 욕심내고 싶다면 오슬로 중앙역으로 향할 것. 이곳에서 4대 피오르 중 하나인 송네 피오르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한다. 환승지인 뮈르달에서 산악 열차로 갈아탄 후, 송네 피오르의 거점인 플롬까지 가는 여정 중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호수와 날카로운 협곡도 피오르 못지않게 아름답다.
섬을 품은 북유럽의 베네치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 스톡홀름은 14개 섬으로 이뤄진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발트해와 멜라렌 호수가 만나는 지점 위, 57개 다리로 연결된 14개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은 각 섬마다 다채로운 분위기와 특징을 띤다. 배를 타고 운하를 누비다 보면 붉은 벽돌 건물이 웅장한 시청사와 화사하고 우아한 왕궁이 자태를 뽐낸다. 그렇게 스톡홀름의 낭만은 수로 위에 흐른다. 여행자가 가장 먼저 향하는 섬은 감라스탄.
스톡홀름의 옛 영화가 남아 있는 구시가지로, 왕궁과 대성당을 비롯해 13세기 중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구스타브 바사 왕의 거대한 동상과 푸른 제복의 군인이 시야에 들어온다면 왕궁에 제대로 닿은 것이다. 13세기에 지은 이 건축물은 현재 스웨덴 왕실의 집무실과 연회 장소 그리고 국가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인다. 12명의 역대 국왕과 여왕의 왕관, 보검 등을 전시하는 ‘보물의 방’과 왕실 예배당 등은 일반인도 출입 가능한 공간이다. 낮 12시에 방문하면 위병 교대식도 볼 수 있다. 그 앞에 1279년에 세운 스톡홀름 대성당은 국왕의 대관식과 왕실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장소다.
푸른 제복의 군인과 청명한 하늘이 인상 깊은 구시가지의 왕궁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곧장 연결되는 대광장에는 노벨 박물관이 있다. 1776년에 세운 증권거래소 건물을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의 역사를 전시하는 노벨 섹션, 역대 수상자들의 업적과 소지품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관, 노벨상 시상식에서 제공하는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노벨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스톡홀름 대성당 앞 대광장에 자리한 노벨 박물관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가 모여 있는 거리인 최프만가탄까지 둘러봤다면 이제 다른 섬으로 향할 차례. 햅스브룬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순식간에 13세기에서 21세기로 이동한다. 쇠데르말름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세련된 경험을 할 수 있는 동네다. 뉴욕의 소호 지구를 모델로 해 조성한 ‘소포Sofo’ 지구에는 북유럽의 세련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모여 있다. 스웨덴식 커피 타임을 뜻하는 피카Fika를 즐기기에 더없이 적절한 곳이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좋은 스웨덴식 커피 타임 ‘피카’
해 질 무렵에는 슬루센으로 향할 것. 감라스탄과 쇠데르말름, 외스테르말름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카타리나히센’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1883년 쇠데르말름의 저지대와 고지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옛 스타일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한 명소다. 전망대에 오르면 오로라만큼 신비로운 빛깔을 지닌 북유럽의 감청빛 밤하늘과 아득한 과거 및 현재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스톡홀름의 마천루, 발트해를 유영하는 배들의 불빛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위치상으로 스톡홀름 시청과 로얄팰리스 등이 한눈에 보여 시내 전경 또는 야경을 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안데르센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덴마크 코펜하겐의 뉘하운 항구, 잘 정비된 거리가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바다가 강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덴마크 코펜하겐은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항구와 운하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고 있다. 코펜하겐의 뉘하운 항구는 ‘새로운 항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무려 1670년에 만들어진 운하다.
거의 모든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뉘하운 항구 주변에는 인어 공주 동상과 <인어 공주>를 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알록달록한 건축물이 일렬로 늘어선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지만, 안데르센이 살았던 시대에는 선원들이 들락거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거친 동네’였다. 작가가 가장 오래 거주한 집인 67번지 인근으로 가면 안데르센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지금 코펜하겐에서 가장 힙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레프샬레외엔으로 향하자. 과거 공업소와 조선소가 있던 이 지구엔 이제 갤러리와 파인다이닝, 예술가의 작업실과 펍, 바 등이 모여 있다. 코펜힐은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도시의 청사진을 그리는 덴마크의 최신 동향을 상징하는 곳이다. 덴마크 건축가 비아르케 잉겔스와 그의 스튜디오 ‘빅’이 최근에 설계한 인공 슬로프로, 폐기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발전소를 코펜하겐 사람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유명한 인공 섬인 파크 아일랜드, CPH-Ø1
약 20㎡ 크기의 나무로 만든 인공 섬 ‘CPH-Ø1’은 작은 보트로 접근할 수 있는 목재 플랫폼으로, 린든나무 한 그루와 함께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우나‧수영‧캠핑 등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유토피아다. 탄소 중립 도시에서 지구를 위한 여정에 좀 더 몰입하고 싶다면 100여 년 전에 지은 우체국 건물을 개조해 문을 연, 지속 가능한 호텔 빌라 코펜하겐에 여장을 풀자. 그리고 자전거를 한 대 빌려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디자인한 자전거 및 보행자 전용 다리인 서클 브리지를 천천히 달려봐도 좋겠다.
헬싱키 대성당 근처에 자리한 카페 요한 & 니스트롬. 시나몬 롤과 카푸치노로 유명하다.
6만 개의 크고 작은 호수를 품고 있는 핀란드는 국토의 70%가 녹지로 이뤄진 나라다. 울창한 숲과 눈부신 호수, 자작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 호숫가를 거니는 상상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면 피스카르스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정원 기업 피스카르스가 1649년에 세운 공방과 작업장 그리고 핀란드에서 주목받는 예술가와 공예가 등이 상주하는 마을이 있다. 주로 19세기에 지은 아름다운 옛집과 공장들은 디자인 숍이나 미술관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피스카르스 호숫가 근처에서는 핀란드 전통 사우나도 경험할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 도심은 숲의 나라 핀란드답게 숲과 가까이 있다. 항공 뷰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녹지로 가득한 도시 모습이다.
숲의 녹음에서 나와 번화한 도시 헬싱키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낯선 도시에 막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곳에 가장 쉽고 빠르게 스며드는 법은 ‘역사’를 찾는 것이다. 역사驛舍에는 그 도시의 역사歷史가 있다. 헬싱키 중앙역은 당대의 건축가 에로 사리넨의 작품이다. 분홍빛 화강암과 옥색 돔형 지붕이 조화를 이룬 유려한 외관이 특징으로, 핀란드가 러시아에서 독립한 1919년에 완공했다.
역사를 중심으로 동과 서로 나란히 뻗어 있는 에스플라나디 거리는 헬싱키의 중심가다. 핀란드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에스플라나디 공원과 마리메꼬‧이딸라‧에리카 등 핀란드의 대표적 인테리어 브랜드 숍이 이 거리에 있다. 에스플라나디 거리에서 동쪽으로 10분가량 더 직진하면 항구와 마켓 광장이 나타난다.
헬싱키에서 가까운 피스카르스 호수에서 해먹을 즐기는 사람들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면 ‘알바 알토’를 주제로 한 여정을 꾸려보는 것도 좋다. 아르텍의 상징적 의자들이 무심히 놓인 알토 대학교 도서관, 알토의 집과 알토 스튜디오, 아르텍 본사에서 직접 디렉팅하는 전시회를 만날 수 있는 아르텍 쇼룸, 알토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 안에 들어선 아카데미아 서점과 카페 알토 등 하루를 통째로 할애해도 시간이 빠듯할 만큼 방문할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