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 The Sage Investor
2023. 12. 05
화투 제조사에서 세계적인
비디오게임 기업이 되기까지
닌텐도 약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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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기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본업인 게임에 더해 영화의 대히트까지 닌텐도의 연승 행진을 돌아본다.
닌텐도는 8월 3일 발표된 2023년 1분기 결산에서 연결 매출액이 전기대비 50% 증가한 4,613억 엔, 연결 영업이익은 전기대비 82.4% 증가한 1,854억 엔을 기록했다. 지난 4월 5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는 약 12억 1,8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애니메이션 업계 기준 겨울왕국 2(약 14억 5,4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2위 실적이다.

영화 대히트의 효과로 2017년 발매된 ‘마리오 카트 8 디럭스’가 167만 편(누계 판매 대수 5,546만 편)을 기록한 것 외에 다른 ‘마리오’ 관련 타이틀도 호조를 보였다. 마리오와 쌍벽을 이루는 젤다 시리즈의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5월 발매)의 세계 판매량은 1,851만 편을 기록했다.
닌텐도가 승승장구하는 이유
닌텐도의 계속되는 히트상품 출시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닌텐도는 야마우치 후지로(山内房治郎)가 교토에서 1889년 창업한 닌텐도골패(任天堂骨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처음에는 화투를 판매했지만 1902년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트럼프 제조를 시작했다. 다시 1953년에는 일본 최초의 플라스틱 트럼프를 발매하고, 1961년에는 주식을 오사카 증권거래소 2부와 교토증권거래소(현재는 시장을 통합)에 상장했다.

1963년 상호를 닌텐도로 변경했으며, 71년 출시한 간이 복사기는 10만 대 이상이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됐다. 이후에도 오락실용 사격 기계인 ‘레이저 클레이 사격 시스템’, 오락실용 게임기인 ‘EVR 레이스’ 등을 개발했다.

화투나 트럼프, 오락실용 게임기 등의 제조 판매를 하던 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진출한 것은 3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 시대에 와서다.

1980년에 들어 닌텐도는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를 발매했는데 이것이 대히트에 성공한다. 내친 김에 닌텐도는 거치형 게임기인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의 개발을 진행시켜 오락실용 게임기 메이커에서 가정용 게임기 메이커로의 변신을 도모했다. 1983년 7월에 패미컴 발매에 이어 1985년 9월에는 패미컴용 게임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발매했다. 이것이 나중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자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오르게 된다.

닌텐도의 1980년도 매출액은 239억 엔, 영업이익은 43억 엔이었으나 게임&워치, 패미컴,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등 잇달아 히트상품을 내놓으면서 1992년에 와서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6,346억 엔, 1,592억 엔으로 증가한다. 불과 12년 만에 매출액은 약 27배, 영업이익은 약 37배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급상승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소니가 치고 나오면서 닌텐도는 고전하기 시작한다. 게임 소프트웨어가 고화질화, 고음질화, 대용량화로 중후장대화되는 트렌드가 강화되면서 개발 자금이 천정부지로 늘어난 것이다.

2000년 9월의 IR에서 야마우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용량 게임은 안 돼요. 이러다가는 전 세계 게임 메이커가 망합니다. 중후장대한 게임은 이제 질렸어요. 게임 비즈니스의 본질은 항상 새로운 즐거움을 개발해 오로지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야마우치는 젊은 층에게 장래를 맡기는 결단을 내린다.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야마우치가 2002년 후계자로 발탁한 인물은 당시 42세였던 게임 크리에이터 이와타 사토루(岩田聡)다. 이와타는 타사 출신으로 사내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사장을 보좌하기 위한 집단지도체제가 구성되었다. 대표이사 회장에는 샤프 출신의 아사다 아쓰시, 대표이사 전무에는 하타노 노부하루, 다케다 겐요, 미야모토 시게루가 취임했다. 이 인사에는 향후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집단지도체제가 필요하다는 야마우치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타가 사장에 취임해 가장 먼저 주창한 것이 게임 인구 확대 전략인데 이것은 이후 닌텐도를 크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소니와 혈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은 점점 게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와타는 ‘이대로라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레드오션으로 변한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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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는 ‘이대로라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레드오션으로 변한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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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닌텐도에게 블루오션은 어떤 시장일까.

이와타와 개발 부문의 톱 미야모토 시게루가 논의를 거듭해서 내렸던 결론은 닌텐도가 2004년에 발매한 휴대형 게임 ‘닌텐도 DS’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닌텐도DS 아이디어의 출발은 소니와 10년 전쟁의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서도 닌텐도를 지탱해준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game boy)를 기반으로 2화면을 사용한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야마우치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소니와의 고화질 경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닌텐도는 휴대용 게임보이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유지시간을 중시했고, 여기에 가격까지 고려해 흑백 화면을 채택했다. 그야말로 시대 흐름과는 역행하는 상품이었지만 스펙을 떨어뜨린 만큼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낮게 잡을 수 있었고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사에서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공받아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이 됐다.

여기에 포켓몬스터의 대히트로 게임보이는 전 세계 누적 판매 5천만 대를 기록했다. 그동안 업계의 상식이었던 고화질 추구를 접고 합리적이고 심플한 게임으로 회귀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이다.

닌텐도DS 역시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재미를 우선하는 기기였다. 여기에 본체는 모바일 게임으로는 이례적으로 2개의 화면을 설치해 하나는 메인 화면으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터치펜을 사용할 수 있는 터치 패널로 이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고안해 냈다. 터치펜을 사용하면 기존 버튼 조작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직관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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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전성기를 이끈 두 사람. 미야모토 시게루(좌)와 이와타 사토루(우). 각각 게임보이와 닌텐도DS를 소개하고 있다.
성능지상주의에서 어머니지상주의로
하지만 가장 큰 과제는 소프트웨어 문제다. 게임 이탈을 막고 새로운 게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나가야 할까. 게임을 하는 시간이 낭비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임은 없을까. 그러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도 관계가 있는 테마를 선택하면, 게임을 시간 낭비라고 느끼던 사람도 게임을 다시 보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2005년에 발매된 ‘뇌를 단련하는 어른DS 트레이닝’은 이와타의 아이디어다. 이와타는 사장직을 수행하는 한편, 게임 크리에이터로서도 차례차례 히트 상품을 개발했다.

도호쿠대 미래과학기술공동연구센터 가와시마 류타 교수가 출간한 ‘어른의 뇌를 단련하기 위한 트레이닝’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본 이와타는 이를 게임에 도입할 수 없는지 미야모토와 상의했다.

게임은 그때까지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인용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업계 상식에 역행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미야모토도 동참해 본격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결과적으로는 고령자 등으로부터 큰 반향이 있어, 대히트를 쳤다.

‘닌텐도DS’와 함께 닌텐도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 것이 ‘닌텐도 스위치’다. 두 사람이 닌텐도DS 개발을 추진할 무렵 거치형 게임기 개발부서는 최첨단 기술 경쟁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와타는 성능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콘셉트의 게임 개발을 제안했다.

아이가 열중하는 게임은 부모에게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게임에 열중하면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게임을 한 뒤 컨트롤러가 방치되면 엄마의 일이 늘어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게임 인구를 늘리려면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와타는 성능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어머니지상주의라는 발상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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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구를 늘리려면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와타는 성능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어머니지상주의라는 발상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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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i는 같은 세대의 게임기에 비해 매우 콤팩트하게 설계되어 있다. 작으면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수납하기 쉽기 때문이다. 작으면 그만큼 소비전력도 아낄 수 있다. 발열을 억제할 수 있으면 큰 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소음을 줄일수도 있다. 공간 절약, 절전, 소음 억제를 실현함으로써 가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게임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본체 기능에는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게임뿐만 아니라 가족이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Wii 전언판과 가족의 사진을 음악과 함께 볼 수 있는 사진 채널, 가족이나 친구의 캐리커처를 게재해 게임 캐릭터로 사용할 수 있는 캐리커처 채널 등을 탑재했다.

닌텐도의 입장에서 Wii는 최초의 인터넷 인프라 사업이었기에 Wii 채널에 관심을 가지는 기업도 다수 생겼다.

또 Wii 리모컨은 3차원 움직임을 감지해 테니스 라켓 흔들기, 볼링공 던지기, 검 흔들기 등의 동작을 게임 내에서 모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으로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툴이라고 하는 컨셉을 실현했으며, 닌텐도의 거치형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1억 대를 돌파했다.
성장을 가속화한 닌텐도의 IP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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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닌텐도의 사업 영역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IP 라이선스다.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닌텐도 캐릭터를 주제로 한 슈퍼 닌텐도 월드를 만든 것도 닌텐도의 IP 전략의 일환이다.
2015년에는 게임 개발사인 DeNA와 자본·업무를 제휴해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닌텐도 스위치’ 개발을 진행하지만, 이와타는 끝을 보지 못하고 담관종양 때문에 급서한다. 향년 55세였다.

65세에 이와타의 뒤를 이은 기미시마 타츠미(君島達己)는 은행 출신으로 경영관리가 주특기였지만, 게임 사업은 숫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포함해 3명의 대표이사가 고령이기 때문에, 조속한 후계자 육성을 경영 과제로 내걸었다.

그는 ‘닌텐도 스위치’를 완성해 발매하는 한편, 이와타의 ‘게임 인구를 확대한다’는 전략을 ‘닌텐도 IP(지적재산권)에 접하는 인구를 확대한다’는 전략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볼거리를 만들거나 타사에 캐릭터 사용권을 제공하는 식으로 라이선스 사업을 확대하고 캐릭터의 인지도 제고에 진력해, 이를 게임 소프트의 매출로 연결했다.

기미시마는 집행 임원 제도의 도입이나 젊은 층의 기용, 프로듀서에의 권한 이양 등을 실시함으로써 카리스마적 톱에 의존하는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도모했다. 2018년 3월기 결산에서 영업이익이 6배가 되자 그는 후루카와 슌타로(古川俊太郎)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줬다.

후루카와는 이와타의 비서를 지냈으며 이와타가 총애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와타가 타계한 뒤에는 경영기획실장, 이듬해 16년에는 이사가 됐고 이후 상무 집행임원, 경영총괄본부장 등을 맡아 차기 사장 유력 후보로 주목받았다.

후루카와는 2018년 사장에 취임하자 기미시마가 주장한 닌텐도 IP 전략을 더욱 밀어붙여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슈퍼 닌텐도 월드를 오픈하고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제작해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10월 20일에는 슈퍼 마리오 최신작도 발표된다. 앞으로 닌텐도가 게임 인구 확대와 IP 전략이라는 양대 미션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마츠자키 다카시(松崎隆司)
경제 저널리스트. 기업경영이나 M&A, 고용, 사업승계, 비즈니스모델, 경제사건 등을 취재. 현재 니케이비즈니스, 이코노미스트, 프레지던트 등의 경제지나 종합지, 산케이비즈니스아이, 일간 겐다이 등에 기고하고 있다.
※ 본 원고는 외부 필자 의견으로 당사의 투자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마츠자키 다카시 |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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