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5. 02. 12
시니어와 젊은이가 어울려
미술관·박물관에 간다
Global Senior Story ③ 독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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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온 선진국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책적·문화적·관계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Story 1. 미국: 의료 서비스부터 자아실현까지 커뮤니티서 노후의 삶 풍요롭다
Story 2. 일본: 전용 플랫폼, 대출상품 만들어 빈집 문제 해결한다
Story 3. 독일: 시니어와 젊은이가 어울려 미술관·박물관에 간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오늘날 시니어가 체험할 수 있는 문화행사는 이전보다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예전 부모 세대처럼 일하느라 바빠서 문화생활이나 취미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시니어가 찾아가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은 실질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시니어는 우선 새로운 문화행사에 관한 소식을 발 빠르게 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문화시설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있을 경우 아예 방문 계획을 포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고독과 소외감은 이러한 노인들의 사회적 활동 및 교류를 제약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프로젝트는 노인과 젊은 세대를 연결시켜 새로운 방식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다. ‘쿨투어리스텐호흐 2KULTURISTENHOCH 2, 약어 KH2’는 함부르크에서 처음 시작된 프로젝트다. 지금은 도시 키엘Kiel과 자매결연을 맺고 점차 다른 도시로도 확장되고 있다.
세대 간 이루어지는 공동 문화체험
프로젝트와 관련된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전면에 등장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프로젝트의 활동 내용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동영상 속에는 노인들이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노인과 어린 학생들이 공동으로 어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발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입소문이 퍼져 나갔고 현재 여러 도시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동영상 속 여성 노인은 KH2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의 한 학생을 만난 이래 지난 2년간 일상생활에서 활기를 되찾았다. 젊은이들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자발적인 신청이 가능하지만 특히 지역 내 고등학생들이
이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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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2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 지역별·연령별로 다양한 활동 소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 ©Kulturistenhoch2
함부르크 고등학생들의 교육과 봉사
KH2 프로젝트가 처음 선보인 곳은 함부르크다. 노인과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사회문화연대의 성격을 지닌 함부르크 시민단체에서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고독과 소외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대도시에 거주하는, 경제적 기반이 넉넉하지 못한 계층을 대상으로 노인들에게 도시 안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문화행사나 예술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이를 비롯한 지역 내 학생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함께 문화시설을 방문해서 체험해보는 활동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는 도시에 거주하는 노인 계층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체험을 수단으로 젊은이들과 시니어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세대 간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함부르크에서는 10여 개 고등학교에서 125명이 넘는 학생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 지역 학교에서도 참여를 신청하는 인원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노인들은 학생들의 배려심 있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으며, 학생들은 지역 내 거주하는 어른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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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의 한 영화관, 대학생과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교류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Kulturistenhoch2
대도시에 사는 노인 소외 문제 해결
대도시의 노인 소외는 꽤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노인 소외 문제는 노인 개개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노인 복지 차원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연결망을 구축하는 문제로까지 확장해 살펴본다면 해법을 찾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동사무소와 같은 행정 부처의 핫라인 전화 연결 서비스가 독거노인에 대한 소통과 관리를 위해 마련돼 있다. 독일은 이 문제를 세대간의 문화 교류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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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2 프로젝트는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문화를 공유한다는
신선한 발상을 통해 주변 도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노인 소외와 노인 빈곤 문제라는 두마리 토끼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주목받고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노인 가정일수록 문화생활에 대한 지출을 줄이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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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2 프로젝트는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한 공간에 모여 문화를 공유한다는 신선한 발상을 통해 주변 도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노인 소외와 노인 빈곤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주목받고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노인 가정일수록 문화생활에 대한 지출을 줄이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북독일을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도시들은 노인들의 문화생활과 예술, 취미활동을 지원하고자 특별한 모금을 시작하고 있다. 노인 복지에 관련된 재단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재단에서도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후원자 측에서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의 교류라는 새로운 시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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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2는 16세 이상의 젊은이, 65세 이상이며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노인이 신청할 수 있다. ©Kulturistenhoch2
독일 전역으로 확장되는 KH2 프로젝트
2016년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20년경부터 북독일 키엘을 중심으로 한 파트너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확장되었다.
호베 휘들러 재단Howe-Fiedler-Stiftung의 지원을 받고 있는 키엘 프로젝트는 북독일의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세대 간 교류를 위한 콘텐츠의 확장과 사회문화적 참여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독일 남부 뮌헨에서도 이 프로젝트와 자매결연을 맺을 계획을 갖고 있다. 뮌헨에서는 특히 ‘지속적인 세대간 연결 프로젝트ein bestehendes, generationen-verbindendes Projekt’를 모델 삼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한다.

KH2 프로젝트에서는 노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일부를 추억할 수 있는 새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KH2 비오그라피쉬biografisch다. 비오그라피쉬는 ‘자서전의biographical’를 의미하는 형용사인데, 여기서는 노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체험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난 뒤 이를 책으로 발간하는 활동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뷰어로 참여하는 젊은이들 역시 중학생 이상으로 이루어 진 지역 내 중·고등학생 또는 대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자서전 기록과 발간 프로젝트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노인과 젊은 세대로 이루어진 30여 쌍이 팀을 이뤄 구술 기록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인터뷰어에 지원할 수 있으며 참여 노인 연령대는 62세에서 95세 사이로 조사됐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쩔 수 없이 격리되어 있는 시간 동안에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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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료 티켓, 전시회 무료 관람 등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Kulturistenhoch2
노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문화 또는 예술에 대한 체험, 삶의 이력과 관련된 주제를 통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학생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시에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들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지도와 도움이 뒷받침된다고 한다. 실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고등학생에 불과한 학생들이 이전 시대의 문화나 사회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구술을 기록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등 자전적 이야기책 발간에 도움을 주고 있다.

2021년 9월 KH2 프로젝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독일 내에서 상영되었는데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참여 및 후원자를 비롯해 18명의 시니어 삶을 조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22년 가을에는 젊은 세대와 시니어의 인터뷰 진행 내용과 자전적 삶이 함께 수록돼 있는
저서 <하지만 나는 이야기할 것들이 없다네Aber ich hab doch gar nichts zu erzahlen>가 발간됐다.

책에는 예술과 문화와 관련된 32개의 시니어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들의 생생한 체험도 책을 읽는 묘미를 더해준다. 지난 2023년 2월 함부르크 곳곳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이 책이 소개돼 많은 사람에게 홍보된 바 있으며 프로젝트를 돕고 지지하는 작가들도 생겨났다. 시니어의 자서전 기록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여러 도서전을 통한 낭독행사도 계획돼 있다고 한다.
글. 김수민(독일 베를린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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