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은퇴자가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종류와 비중에 관계없이 은퇴 기간 동안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지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은퇴자가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종류도 다르고 비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솜나스 바수 캘리포니아 루터교대 교수는 은퇴 기간을 10년 간격으로 셋으로 나눴다. 또 은퇴자의 주요 지출 항목을 세금, 기본생활 비용, 의료·간병 비용, 여가생활 비용 등 넷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은퇴 기간과 지출 항목별로 지출 규모와 물가 변동률을 달리 적용했다.
먼저 세금 관련 지출은 은퇴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에 맞춰 매년 3%씩 상승한다. 하지만 지출 규모는 은퇴 이전과 비교해 크게 감소한다. 퇴직하면서 과세 대상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바수 교수는 65세 때 세금 지출이 50% 감소하고 이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봤다. 세금처럼 기본생활 비용도 매년 3%씩 늘어난다. 하지만 지출 규모는 은퇴 기간 동안 꾸준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65세 때 30%, 75세 때 다시 20%, 85세 때 다시 한 번 10%가 감소한다. 이렇게 해서 85세 때 지출은 은퇴 이전의 절반(50.4%) 수준으로 떨어진다.
의료·간병 비용은 매년 7%씩 상승한다. 물가상승률(3%)보다 2배 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셈이다. 게다가 지출 규모도 계속해서 늘어난다. 65세 때에는 은퇴 전과 비교해 15% 상승하고, 75세 때 다시 20%, 85세에 다시 한 번 25%가 상승한다. 이렇게 되면 85세 때 의료·간병 비용은 은퇴 이전보다 3.7배나 늘어난다.
여가생활 비용도 물가상승률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여기서는 의료·간병 비용과 마찬가지로 매년 7%씩 상승하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출 규모는 은퇴 시점에 크게 상승했다가 빠르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65세에 은퇴할 때 지출이 50% 늘어났다가, 75세에 50%, 85세에 다시 75%가 줄어든다. 그래서 85세 때는 은퇴 이전 실질 여가생활 비용의 40%만 지출하게 된다.
바수 교수가 2005년 제시한 것을 모든 은퇴자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은퇴자의 지출을 주요 항목별로 나누고 지출 항목별로 다른 상승률을 적용한 것과 은퇴 기간에 따라 비중을 달리 가져가는 것은 노후자금을 설계할 때 참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은퇴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은퇴자의 지출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봤다. 은퇴 이후 지출 패턴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은퇴자금 규모가 달라지고, 은퇴자금을 모으기 위해 매달 저축해야 하는 금액도 달라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은퇴 후 지출이 꾸준하게 늘어난다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안정적인 노후 준비 방법이다. 하지만 미래 더 많은 지출을 하려면 지금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은퇴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출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노후자금 마련이 수월해진다. 하지만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거나 예상치 않은 지출이 발생하면 노후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 의료와 간병 관련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이후 생활비 감소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