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의 학력과 직업, 자산뿐 아니라 성격과 외모 심지어 집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이름하여 ‘육각형 인간의 시대’다.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활약하며 다재다능한 사람을 뜻하는 ‘팔방미인’에서 집안 배경 같은 선천적 요소가 더해졌다. 육각형 인간은 정말 완벽한 걸까? 우리가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육각형 인간을 갈망하는 심리적 근원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열등감’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고, 두 발로 걷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며 그 안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다.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 두 발로 걷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며 열등감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이런 열등감이며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는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 욕구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유년 시절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는 동안 학업에도 뒤처지고, 형제들 중에서도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열등감을 성장의 동력으로 바꾸었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삶의 족쇄가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극복하고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여겼다.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Ichiro Kishimi는 <미움받을 용기> 속 철학자의 입을 통해 청년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민더베르티히카이트게퓔Minderwertigkeitsgefühl’이라고 했네. 이 말은 독일어로 ‘가치Wert’가 ‘더 적은Minder’ ‘느낌Gefühl’이라는 뜻이지. 즉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 판단과 관련된 말이야.”
그렇다. 사실 열등감은 주관적 감정이다. 객관적 ‘열등성’이 아닌 주관적 ‘열등감’인 것이다.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감정으로, 우리는 학교와 회사 등 현실 세계와 SNS 등 온라인 세계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며 열등감에 휩싸인다.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의 입을 통해 성공은 실패와 열등감을 재료로 한다고 전한다.
열등감의 정체를 파악한다면 내 안의 열등감을 성공과 성장의 연료로 바꿀 수 있다. 육각형 인간을 무작정 좇고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육각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변곡점은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카이스트KAIST에는 실패연구소가 있다. 2021년 6월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카이스트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과감한 도전 정신 함양을 목표로 한다. 작년 11월, 실패연구소는 실패주간을 정하고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에 관한 사진전을 비롯해 ‘카이스트 실패 학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와 ‘실패 세미나: 실패를 성공적으로 다루는 방법’ 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2023년 열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실패주간 포스터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을 것 같은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일수록, 완벽하고자 하는 욕구가 클수록 완벽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크다.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전에 실패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실패감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는 개인이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실패의 경험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보여주는 행보가 반가운 이유다.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로비에 전시된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전시된 작품에는 실패를 느낀 카이스트 학생들이 당시의 생각을 기록한 메모가 빼곡하다.
송진우 선수는 한화이글스의 투수이자 41년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KBO에서 선정한 레전드 선수 10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개 시즌을 선수로 뛰면서 불멸의 기록들을 남겼다. 역대 최다 타자(1만2,708명)를 상대했고, 역대 최다 이닝(3,003이닝)을 투구했다. 역대 최다 탈삼진(2,048개)을 잡았으며, 역대 최다승(210승)을 올렸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것 말고도 역대 최고의 기록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역대 최다패(153패) 투수라는 것이다.
한화이글스 송진우 선수는 역대 최다승 투수이자 역대 최다패 투수였다.
최다승 투수가 곧 최다패 투수라는 아이러니는 야구가 실패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열 번 타석에 들어서서 세 번만 안타를 쳐도 우리는 그 선수를 ‘강타자’라 부른다. 이 말은 곧 열 번 중 일곱 번은 출루에 실패한 채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패를 맞닥뜨리기도 전에 앞으로 다가올 실패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이 내 인생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내가 만난 프로야구 레전드들은 그 누구보다 지독히도 많은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이후다. 레전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썼고, 애쓴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실패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성공은 수없이 많은 실패 뒤에 따라온다. 크고 작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경험이 성공이라는 정육각형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빈틈을 메우는 것이다. 세상이 정한 ‘육각형 인간’이란 프레임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 나만의 속도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결국 인생은 완벽이 아닌 완성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여정이니까. 계속해서 “On My Way”를 외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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