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태어난 인류는 자연을 이용해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개발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가 많이 생겨날수록 자연은 멀어져갔다. 자연에서 시작했으나 빈틈없이 빼곡해진 도시는 자연을 뱉어냈고, 우리는 다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다. 자연과 호흡하는 새로운 건축과 미래의 공간을 찾아가본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뮤지엄산의 본관과 워터가든 ©뮤지엄산
미술관은 대부분 도시의 중심에 자리하는데, 접근성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의 ‘뮤지엄산Museum SAN’은 이런 접근성과는 동떨어진 숲속 깊은 곳에 자리한다. 이름 그대로 산 자체가 미술관이 되었다.
2005년 안도 다다오는 건축 의뢰를 받고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에 매료됐다고 한다. 원주 근교 오크밸리와 이어진 산자락에 자리한 뮤지엄산은 주변 지역에서 나는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안도 다다오의 상징과도 같은 노출 콘크리트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그 대신 자연에서 얻은 건축 재료를 활용함으로써 자연과 동화된 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미술관 주변을 산책하듯 걷다 보면 내부와 외부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연스럽게 여러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명상을 하거나 바람을 느끼거나 빛의 공간을 만나기도 하며, 자연 풍경을 다채롭게 감상할수도 있다. 전시 공간에 머무르거나 자연의 품에서 공간사이 사이를 누비며 보내는 한나절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위로를 선사한다.
입체적인 산세를 표현한 지붕이 돋보이는 서울 성북구의 오동숲속도서관 입구 ©오동숲속도서관
위로와 쉼을 선사하는 건축은 서울 도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서울 성북구의 ‘오동숲속도서관’은 월곡산의 형상을 따라 지붕이 중첩되는 공간 구성이 특징으로, 기존의 공원 길을 보행 동선으로 이용하고 도서관 내부까지 연장해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을 그대로 일상 공간으로 들인 것이다. 또한 도서관 지붕 목구조와 책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과거 목재 파쇄장이었던 곳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나무를 이용해 친환경적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산을 닮은 산속의 도서관은 말 그대로 자연 그자체. 대도시 안에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이 자연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숲 전망과 콘크리트 인테리어의 조화가 매력적인 공간, 카페 콘크리트월 ©콘크리트월
뮤지엄산과 오동숲속도서관이 자연 그대로 건물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면, 카페 콘크리트월과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은 자연 요소와 인공의 조화가 오히려 미래 공간의 해답을 보여주는 듯하다.
먼저 충북 제천에 자리한 카페 ‘콘크리트월Concretewall’은 한국의 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NAMELESS Architecture가 설계했다. 이곳은 건축물 명칭에 콘크리트라는 건축 재료가 들어갈 정도로 지극히 인공적인 건축물이지만, 돌·풀 등 여러 가지 자연 요소를 이용해 인공적 공간이라는 부담을 줄였다. 청풍호 인근에 있는 카페 콘크리트월은 주변과 경계를 두고 단절하기보다는 뻗어나가는 느낌을 준다. 자연의 돌과 인공 콘크리트를 교차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커다란 콘크리트 돌기둥과 제천의 푸른 산세가 번갈아 보이는 풍경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일본의 자연주의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The Haruki Murakami Library’은 도쿄 중심에 위치한 와세다대학교에 있다. 공식 명칭은 ‘와세다 국제 문학의 집The Waseda International House of Literature’으로, 세계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모교인 와세다대학교에 자신이 아끼는 재즈와 클래식 음반 2만여 장, 친필 원고, 책 등을 기증하며 만들어졌다. 이곳은 자연 재료로 전통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한 건축가 구마겐고Kengo Kuma가 설계했다.
인공물인 건축은 정형화되기 쉽고 기하학 형태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자연은 곡선과 아치를 활용해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특성이 있다.
무라카미하루키도서관은 이러한 자연의 특성을 이용해 마치 예전부터 조금씩 자라나고 커져 현재의 건축물이 된 듯 세련되고 우아하며 새로운 건축을 만든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마주하는 높고 깊은 아치형 중정은 도서관의 숨은 공간감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재즈 감상실은 존재 자체로 또 다른 파격이다.
에두아르 프랑수아가 선보인 ‘타워 플라워’는 거대한 진열장 안에 전시된 식물을 보는 듯한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타워 플라워
프랑스 파리 북서쪽 17구의 ‘타워 플라워Tower Flower’는 도심에서 자연을, 그러나 화분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건축물이다. 화분이 상징하는 것은 자연환경의 소형화와 기능적 간편함이다.
건축가 에두아르 프랑수아Edouard François는 화분의 기능적 장점과 기존 소형 화분을 대형 화분으로 변형하면서 나타나는 미학적 특성을 이용해 파리의 아파트 건물 발코니 전체를 둘러싸는 과감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심의 수직 화분 정원을 마주하며 다시 한번 자연과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골목마다 작은 화분들의 군집이 도심에서 자연에 대한 갈증을 나름대로 풀어내는 방식이라면, 이곳은 수직적 적층 방식으로 도시 풍경에 새로움을 더했다.
일명 ‘하얀 나무’라 불리는 소우 후지모토의 ‘아르브르 블랑’은 자연 요소 하나 없지만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르브르 블랑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Fujimoto Sou는 프랑스 몽펠리에 마리안 항구 지구에 자리한 아파트 ‘아르브르 블랑Arbre Blanc, White Tree’에 수많은 백색 발코니를 디자인했다. ‘솔방울 아파트’라는 별칭처럼 건축가는 미래 건축이야말로 자연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치 하얀 나무와도 같은 건축물을 만든다. 나뭇가지는 비슷하지만 똑같은 건 하나도 없듯이 각 세대의 발코니는 비슷하지만 같은 모양은 한 곳도 없다. 백색의 크리스마스 트리와도 같은 17층의 건축물은 자연을 끌어들이지 않았지만,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홀로 우뚝 선 나무는 강한 비바람에 쉬이 쓰러지기 마련이다. 자연을 터로 하는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들이고 그로부터 얻은 지혜를 건축에 활용해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이젠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매개체로 건축이 들어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