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도 원하는 대로,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부상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형태의 콘텐츠를 의미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이용자마다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참여 방식과 그 정도에 따라 온라인 롤링 페이퍼부터 MBTI 심리 테스트, 이용자가 스토리의 흐름을 결정하는 인터랙티브 영화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한다. 지금 다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OTT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다섯 종류의 엔딩을 보여줘 화제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이용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생산자는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순서와 결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율성을 부여한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이용자는 점점 본인의 취향과 선호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데, 인터랙티브 형식은 이용자가 콘텐츠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게 해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 이용자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콘텐츠를 소비하며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스페셜 콘텐츠가 대표적 예다. 2019년 에미상 최우수 TV 영화 부문을 수상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다섯 종류의 엔딩을 보여준다. 영화 주인공인 젊은 게임 개발자 스테판 버틀러는 <밴더스내치>라는 책을 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계속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아침에 먹을 시리얼 종류를 고르는 별것 아닌 선택부터 누군가를 살인할지 말지 같은 중요한 결정까지. 시청자가 결정을 내리면 버틀러는 그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영화는 40분 만에 끝날 수도 있고, 2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뉴진스는 4개 버전의 ‘하입보이’ 멤버별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차별화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HYBE LABELS’
전 세계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K-팝 산업에서도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부상하고 있다. 4세대 대표 아이돌 뉴진스는 ‘하입보이Hype Boy’ 뮤직비디오를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공개했다. 50초 길이의 인트로 MV가 끝나면 각 멤버가 주인공인 4종의 MV가 선택지로 주어진다. 이용자들은 원하는 순서대로 MV를 시청하며 전체 서사를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정규 8집 앨범을 발매한 아이돌 샤이니는 앨범 발매 전 3D 미로 형태의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를 공개했다. 팬들은 미로를 탐색해 그 안에 숨어 있는 새 앨범과 관련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생성형 AI는 이용자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산자가 부여한 범위 내에서 이용자가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넘어 이용자가 콘텐츠를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등 이용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방식을 통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됐다.
생성형 AI 기술이 대중화되기 전, 콘텐츠 제작 툴의 발전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여겨온 콘텐츠 생산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영상 제작자나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콘텐츠 생산자와의 소통 문턱도 낮아졌다. 생산자에게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하기 쉬워진 것이다. 이제는 이용자와 소통하지 않는 콘텐츠 생산자가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길 정도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문턱은 더욱 낮아졌다. 이제 이용자들은 본인이 상상만 해오던 콘텐츠를 실제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부터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AI 커버곡’이 대표적이다. AI가 특정 가수의 창법이나 목소리를 학습해 커버곡을 만드는 것이다.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뉴진스의 ‘하입보이’나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 등 이용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커버하는 듯한 모습을 구현해낸다.
AI 벤자민이 대본을 써서 화제를 모은 단편영화 <선스프링>의 동영상 갈무리. 화제성에 비해 내용의 개연성이 부족해 혹평을 받았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영화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상상력만 있으면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AI가 대본을 쓴 첫 영화는 2016년에 나왔다. 9분 분량의 단편영화 <선스프링>이 그것이다. 감독 오스카 샤프는 AI 연구자 로스 굿윈과 협업해 영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AI를 만들었다. 이 AI는 온라인에 공개된 1980~1990년대 SF 영화 시나리오를 학습했고, 남녀 세명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 영화 시나리오를 써냈다. 다만 시나리오의 개연성 문제로 개봉 당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약 8년이 지난 지금, 누구나 챗GPT를 활용해 그럴듯한 영화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됐다.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드는 ‘텍스트 투 비디오’ AI를 활용해 영상화도 가능해졌다. 아직은 AI가 생성한 비디오 결과물이 어색하지만, <선스프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8년 뒤엔 어떻게 진화해 있을지 모른다.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 제시한 ‘핵개인’ 시대의 사람들은 본인이 의사 결정의 주체성을 갖는다. 핵가족 시대와는 달리 타인과 상호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도래는 어쩌면 당연하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자신과 타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스플’과 같이 ‘MBTI 소개팅’ 인터랙티브 게임을 다루는 앱 등이 더 많이 등장할 전망이다. 이미지 출처: 스플
이용자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MBTI를 비롯해 각종 성격 및 심리 테스트 형식의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22년 공개된 선택형 인터랙티브 게임 앱 ‘스플Storyplay’의 콘텐츠 ‘MBTI 소개팅’은 공개 한 달여 만에 누적 조회 수 1,000만 뷰를 넘는 등 Z세대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각자 다른 MBTI 성향을 가진 16명의 상대와 가상 소개팅을 하면서 나와 가장 잘 맞는 MBTI를 찾는 콘텐츠다. 재미로 시작했을지라도 본인의 연애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MBTI를 비롯해 다양한 심리 테스트 결과는 SNS에 공유해 친구에게 나에 대해 알리고, 나도 친구의 성격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타인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이에 영향을 받아 심화하는 개인화 경향을 고려해보면 인터랙티브 콘텐츠 붐은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보고 듣는 즐거움을 넘어 콘텐츠에 직접 참여하고, 콘텐츠를 매개로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까지 주는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