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가 젊어지고 있다!
‘크캉스’ 떠나는 MZ세대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플렉스’에 집중하던 소비 패턴은 이제 ‘가심비’, ‘짠테크’도 공존하고 있다. 이는 가격 대신 마음을 충족시키는 ‘프리미엄 소비’가 새로운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이렇듯 산업 판도가 바뀌고 있다. 명품을 넘어 여행업계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최근 경제 연구소의 발표를 살펴보면 명품 시장의 성장이 눈에 띈다.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전 세계 명품 시장규모가 3,530억 유로약 501조 원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고,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 또한 2021년 말 기준 글로벌 100대 명품 기업 연간 매출액은 3,050억 달러약 400조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럭셔리 시장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올 초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한국 명품 소비 시장 규모가 168억 달러약 21조 원로, 전년 대비 24%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MZ세대가 럭셔리업계를 좌우하는 ‘큰손’으로 급부상하며 업계 판도를 바꾸고 있다. 그뿐 아니라 명품 시장을 넘어 여행업계까지 이들의 영향력이 퍼져나가고 있다. 가격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그 원동력이다.
전에는 크루즈 여행 하면 기성세대의 전유물, 슈퍼리치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인식이 바뀌고 있다. 로얄캐리비안Royal Caribbean 크루즈가 “크루즈는 확실히 젊어지고 있다”며 “그만큼 젊은 층에도 크루즈의 매력이 통한다”고 내다봤다.
국제크루즈선사협회CLIA가 내놓은 크루즈 리뷰를 살펴보면 아시아 지역 크루즈 여행 승객은 2020년 대비 2021년 26% 증가했다. 크루즈 승객 평균연령은 2019년 46.2세에서 2020년 46.3세, 2021년 35.4세로 젊어지는 추세다.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각각 24%, 25%, 37%를 보이며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평균 체류 기간은 2019년 4.2일에서 2020년 3.9일, 2021년 3.1일로 짧은 일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철 ‘크캉스크루즈에서 보내는 바캉스’를 즐기기에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균연령 및 크루즈 체류 기간을 분포도로 따졌을 때, 젊을수록 짧은 일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크루즈에서는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다. 대부분 특급 호텔 수준의 즐길 거리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뷔페 식사에 다수의 레스토랑과 바, 카페, 면세점, 노래방까지 갖추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영화관, 대공연장, 카지노, 피트니스 센터, 테니스 코트, 범퍼카, 조깅 트랙, 놀이방, 수영장까지 이용 가능하다. 모든 게 함께 움직이는 바다 위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인 셈이다. 밤마다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은 크루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묘미로,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다.
특히 MZ세대가 일정 중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액티비티가 총집합한 꼭대기 층의 야외 덱이다. 크루즈 첫날 승선하면 젊은 층은 이곳부터 찾는다. 대표 액티비티 시설인 실내 스카이다이빙 ‘아이플라이iFly’부터 인공 파도타기 ‘플로 라이더Flow Rider’, 암벽등반은 물론 최신식 시설과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7m 높이 유리관 속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기분은 새롭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 즐기는 인공 파도타기는 현실감을 잊게 하는 압도적인 경험이다. 뱃머리 쪽 가장 높은 덱에는 관람차가 있다. 실컷 즐기고 실내외 수영장과 선베드에서 휴식을 취한다. 성인 고객만 이용하는 어덜츠 온리Adults Only 전용 풀장도 갖췄다.
크루즈 여행은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도 선호한다. 어린이 전용 풀장과 유아 놀이방은 기본으로 갖추고, 유아교육을 전공한 전문 도우미가 상주한다. 아이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전문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크루즈 일정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최근 크루즈에는 공연뿐 아니라 테마파크에서 즐길 수 있는 범퍼카 같은 놀이 시설도 갖춰져 있다.
크루즈 여행이라고 해서 육지 여행은 못 한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기항지 투어를 할 수 있는데, 기존 여행처럼 짐을 몇 번이나 풀었다 싸고 힘들게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없다. 매일 아침 다른 기항지에서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를 찾는 색다른 관광이 기다리고 있다.
크루즈업계도 MZ세대의 더 많은 유입을 위한 다변화에 힘쓰고 있다. 우선 단기 일정으로 초호화 크루즈를 합리적 가격에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크루즈사 입장에선 평생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7박 이하 단기 크루즈나 3~4일에 해당하는 상품을 더 많이 제공하고 있다. 젊은 감성을 반영하기 위해 크루즈 내 분위기도 바꾸는 추세다. 지나친 화려함 대신 편안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전환하는 등 형식과 절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눈에 띄는 건 경험을 밀착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다국적 승객이 타는 만큼 여러 국가 출신 승무원이 탑승하며, 승무원 수도 늘리고 있다. 스펙트럼호의 경우 함께 오른 승객은 4,246명, 승무원은 1,551명이다. 승객 2.7명당 승무원 1명꼴로 응대하는 셈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MZ세대에게 맞춰 서비스 부분에서 디지털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승선 전부터 선상까지 체크인과 스케줄 확인, 다이닝 예약 등이 크루즈 앱을 통해 이루어진다. 선실 내에 준비된 QR코드를 통해 객실 승무원을 대면하지 않고도 하우스키핑 등 콘시어지 서비스 요청이 가능하다.
크루즈 여행의 백미는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루프톱이나 밤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야경 투어다.
이뿐 아니라 신규로 건조하거나 리뉴얼하는 크루즈의 경우 젊은 층에 맞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 리버 크루즈 선사인 아마워터웨이즈AmaWaterways는 ‘에센스 오브 버건디 와인 크루즈Essence of Burgundy Wine Cruise’라는 와인 테마 일정을 선보여 40대 미만 승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탐험 크루즈’도 선보인다. 린드블라드 익스페디션Lindblad Expeditions이 운영하는 크루즈로, 가격은 비싸지만 일반 크루즈로는 접근이 불가한 이색 지역으로 향한다. 아마존, 북극, 남극, 갈라파고스제도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하이킹‧스노클링‧카약 등 액티비티를 즐기며 야생 생태계를 탐험한다.
해상 위에 갤러리를 마련한 크루즈도 생겨나고 있다. 리젠트 세븐 시즈 크루즈Regent Seven Seas Cruises의 스플렌더호는 최고 예술품 컬렉션을 선내에 기획하며 아트 팬덤 공략에 나섰다.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 작품 두 점과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기획에만 2년 이상 걸리고 작품은 총 300여 점에 달한다.
젊은 세대는 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해 자신이 원하는 경험을 찾아다닌다. 사진 명당을 찾아 인증샷을 찍고 SNS에 올리는 ‘인증 문화’에 익숙하다.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SNS에는 ‘크루즈’, ‘크루즈 여행’ 관련 해시태그를 붙인 게시물이 19만 건 넘게 올라와 있다. 한때 진입 장벽이 높게만 느껴졌던 크루즈 여행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꼭 한번 가고 싶은 여행지로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