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술은 경제, 보건, 환경,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내로라하는 세계 강국들이 바이오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중에서도 바이오 기술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인류의 생존은 물론 국가 발전과도 직결되는 바이오 기술의 동향과 국내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1998년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바이오테크 시대The Biotech Century>에서 21세기는 바이오 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23년 글로벌 바이오 기술 시장의 규모는 약 8,500억 달러(약 1,147조5,000억 원)로, 이는 10년 동안 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이와 같은 수치는 바이오 기술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단순한 생명과학의 도구에서 의료, 농업, 환경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산업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제러미 리프킨의 말처럼 바이오 기술은 의료, 환경, 산업 전반에 걸쳐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바이오 기술은 건강, 환경, 산업 등 다방면에서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바이오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는 국제적으로 기술 주도권을 가지며, 글로벌 협력과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바이오 기술 협력은 국제 개발 및 외교 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강화하며 바이오 기술의 발전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기술을 둘러싼 경쟁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미국은 생체 정보 유출을 국가 안보 위협 요인으로 보고, 2~3년 전부터 중국과 ‘바이오 패권 전쟁’에 뛰어들었다. 주목되는 점은 바이오 관련 대중 제재를 담은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내세워 중국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미국 하원상임위원회는 일부 중국 바이오 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인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생물보안법은 미국이 자국 안보와 관련해 우려되는 중국 바이오, 생명공학 기업과 거래 및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미국 국민 유전자 데이터와 주요 바이오 의약품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목적에서 발의됐다. 거래를 제한하는 기업으로는 중국의 임상시험 위탁기관CRO,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유전체 기업 등이 대거 포함됐다.
지난 9월, 미국 연방 하원은 중국의 간판 바이오 기업들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제재하는 생물보안법을 가결했다. 해당 법안이 실행될 경우, 중국 바이오 기업은 오는 2032년 1월 1일 이후 미국 시장에서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미국이 중국 제약 바이오 기업들을 견제하는 이유는 중국이 전 세계 바이오 1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호주전략정책연구소는 인공지능, 바이오 등 핵심 기술에서 최근 5년간 연구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가 순위를 발표했다. 이 중에서 중국이 7개 기술 중 4개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기업들의 중국 위탁 개발과 생산 의존도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제약·바이오 업계를 대표하는 미국바이오협회BIO의 조사 결과, 미국 기업 124곳 중 79%가 중국에 기반을 둔 CDMO 업체 또는 CRO 등과 최소 1개 이상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중국은 최근 수년간 바이오산업에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글로벌 과학 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2019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명과학 분야 상위권 국가 중 미국이 1위를,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2015년 이후 연구 성과 상승률 66.2%로 빠른 성장세를 보인 1위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중국은 바이오 기술을 포함한 전략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도입하고,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는 기업을 대상으로 현금성 지원 등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바이오산업을 키우고 있다.
실제 중국 상하이시는 최근 최첨단 바이오 의료 기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생물보안법안에 대한 입법 절차 진행에 따른 우려로 중국 바이오 기업 우시앱텍의 2024년 상반기 미국 매출이 처음으로 감소했다.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전쟁 반사 수혜를 기대하는 세계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본 최대 CDMO 업체인 후지필름은 미국 내 바이오 제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위탁개발생산 사업에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의 노보 홀딩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CDMO 기업 카탈런트를 인수했으며, 스위스 또한 미국 생물보안법 통과를 계기로 현지 투자를 늘리는 모습이다. 인도의 대형 제약사 닥터 레디스의 자회사인 오리겐은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시설을 착공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 홀딩스는 CDMO 기업인 카탈런트를 인수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패권 경쟁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최근 몇 년간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민간투자를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2023년에 설립된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바이오 산업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은 바이오 기술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계는 법안의 최종 통과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중국 의존도가 80%에 근접한 만큼, 중국 기업과 거래해온 기업은 늦어도 2031년까지는 새 파트너를 물색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입지가 흔들리는 틈을 타, 국내 기업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기회가 왔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실제 미국의 생물보안법안 입법화 추진 이후 중국 기업의 신뢰도는 최근 크게 추락했다.
미국의 생물보안법이 최종 통과되면 국내 기업들에 단기적인 수혜가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국내 바이오 기업에 대한 외교적‧정책적 지원, 기업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인도와 일본 등 다국적 기업들도 바이오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어, 고객사 니즈를 맞출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한 기업들에 중장기적인 수혜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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