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4. 04. 17
황혼기 사랑의 여정 그린 ‘리얼리티 쇼’
전 세대 시청자가 열광하다
Global Senior Story ③ 미국 편
img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고민해온 선진국들의 시니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책적, 문화적, 관계적 뒷받침을 통해 시니어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선진국들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Story 1. 호주: 세계 5위로 평가받는 호주의 연금제도, 시니어들은 어떻게 노후 준비를 할까?
Story 2. 독일: 독일 요양소에선 반려동물이 노인 치료하고 돌본다.
Story 3. 미국: 황혼기 사랑의 여정 그린 ‘리얼리티 쇼’ 전 세대 시청자가 열광하다.
Story 4. 일본: 빈집 주차장 대여 서비스서 고령자 해법 찾는다.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한국에서 요즈음 결혼을 원하는 솔로 남녀가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함께 짧은 시간 동고동락하며 시간을 보내는 리얼리티 매칭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역시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배첼러The Bachelor’라는 텔레비전 시리즈다. 미국의 대표적인 채널 ABC에서는 2002년 3월부터 연평균 2개의 시즌이 방영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싱글인 남자 한 명(배첼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약 20명의 여자가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고, 선택받지 못한 여성 참가자들은 한 명씩 탈락하게 된다. 이후 이 남성은 마지막 한 명의 여성을 선택하고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이것이 이 쇼의 결말이다. 보통 이 둘이 약혼을 약속하며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결혼까지 연결될지는 그 이후 참가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현재까지 총 25쌍의 결혼을 성공시킨 이 프로그램은 꾸준히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img
‘골든 배첼러’에 참가한 게리와 22명의 여성.©ABC
60세 이상 참가자들로 구성된 후속작 ‘골든 배첼러’
배첼러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여러 가지 후속작이 탄생했다. 여자 한 명의 사랑을 얻기 위해 20여 명의 남자가 고군분투하는 ‘배철러레트Bachelorette’, 이전 시즌에서 선택받지 못한 참가자들이 휴양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커플을 맺으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 ‘배첼러 인 파라다이스Bachelor in Paradise’ 등이 대표적이다.
img
‘골든 배첼러’에 참가한 남성 참가자 게리 터너.©ABC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20~30대의 젊은 남녀들의 사랑을 주로 그린 이 프로그램이 올해 큰 변화를 시도했다. 바로 2023년 9월 방영을 시작한 후속작 ‘골든 배첼러The Golden Bachelor’다. 인디애나주 출신 음식점 점장출신의 게리 터너Gerry Turner가 주인공으로 60세 이상 여성 22명과 데이트를 하고, 그중 남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졌다.

게리는 고등학교 시절의 연인과 결혼 후 2017년 부인을 잃었다. 43년 지속된 결혼생활 중 예기치 못한 이별이었다. 부인을 잃고 깊은 상실에 빠져 살던 터너는 다시 마음을 잡고, 5년여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게리는 은퇴 후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낼 호숫가 새 집을 산 지 채 2주가 되지 않아 부인이 병에 걸리게 되었고, 병이 급속도로 악화 되면서 간병할 여유도 없이 부인을 잃게 된 사연을 털어놓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많은 이가 은퇴 후 배우자와 함께 즐거운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그 언젠가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미래를 알 수 있을까. 게리는 이를 미처 시작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게리의 이야기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노후의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고, 이는 분명 높은 시청률을 견인한 요인이 되었다.

모든 여성 참가자도 60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혹은 다른,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오랜 결혼생활 후 사별했거나, 한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을 포기하는 등 참가를 신청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영화같이 극적이고 때로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소셜미디어 등에서 인기를 얻으려는 등 ‘올바르지 않은’ 참가 의도를 가진 사람 없이,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하는 명백한 이유를 지닌 참가자들로만 구성돼 더욱 진실된 쇼가 됐다는 평가다. 60세 이상 여성 참가자들은 게리와의 데이트를 통해 남편과의 사별 이후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에 대한 죄책감, 몇 번의 결혼 실패로 자신감이 없었던 지난 삶에 대한 후회,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망 등 인생 후반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하고도 진실된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많은 이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사랑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깨달음
img
미국의 대표 방송사 ABC에서 방영하는 60세 이상 참가자들로 구성된 리얼리티 연애 TV 시리즈 ‘The Golden Bachelor’와
그의 전신 ‘The bachelor’, ‘The bachelorette’, ‘Bachelor in Paradise’.©ABC
프로그램 참가 여성 중 한 명인 클레어Claire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간이 점점 얼마 남지 않았어요. 수십 년간 일을 하며 경력을 쌓고 자녀들을 양육하며 거의 한평생을 다 보냈어요. 이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의 새로운 새 장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는 말이죠. 직업이 있는 여성들은 이제 퇴직을 하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고, 현재 혼자인 상황이죠. 하지만 할머니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을 찾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 역시 삶의 동반자를 원합니다.”

지난 20년간 젊은 참가자들이 한 남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배첼러), 혹은 한 여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배철러레트) 고군분투하는 모습만을 그려왔다면, ‘골든 배첼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여성 참가자들은 자신이 선택받든 받지 못하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고, 자신의 삶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게리에게 선택받지 못한 여성들은 마냥 슬퍼하거나 아쉬워하기보다는 “본인 자신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여성 참가자들은 60이 넘었지만 여전히 로맨틱한 관계를 꿈꿀 수 있는 나이이며,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시사점은 프로그램을 통해 게리와 참가자들이 다양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단순히 산책을 하거나 테이블에 앉아 빙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테니스를 치고,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산에서 집라인을 타는 등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60대와 70대의 데이트, 사랑을 찾아나가는 열정과 방식은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훤칠한 키에 훈훈한 외모를 갖고 있는 게리를 보며 한편에서는 자신도 72세에 게리처럼 멋지게 나이가 드는 행운아가 되고 싶다는 의견도 많았다. 게리는 72세의 사랑을 위해 적극적이고 유연한, 또한 대담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게리는 “사랑을 위해서 다른 주로 이사를 할 의향도 있고, 내가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을 벗어버릴 각오도 되어 있다. 사랑을 위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상황이 되는대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골든 배첼러’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는 60~70대 시니어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60세 이상 시니어들의 사랑 이야기는 더 이상 슬프거나 우울한, 혹 정적인 모습이 아니다. 부모 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의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여전히 가슴 뛰고 설레고 아름답다. 이를 몸소 입증해낸 ‘골든 배첼러’에 박수를 보낸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이경원 텍사스주립대 교수
COPYRIGHT 2021(C) MIRAE ASSET SECURITIES CO,.LTD.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