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2023. 08. 16
50대 기술직 도전!
퇴직 5년 전부터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
퇴직 전 준비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들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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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뼈아픈 후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후 준비다. 아직 손쓸 여지가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의 내 삶을 볼 수 있다면 노후 준비를 서두를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퇴직 후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고, 어떻게 겪어냈는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귀 기울여 들어본다.

Part 1. Regret
1. 은퇴자 400명 서베이 “개인연금 관리하고 투자 좀 신경 쓸 걸…”
2. 선배들의 오답노트 은퇴자들의 실제 사례로 알아본 미리 준비 못하면 불행해지는 4가지
3. 일본 은퇴자들은 무엇을 후회하나, 일본 고령자들이 후회하는 1순위

Part 2. Advice
4. 후회없는 노후 위한 준비, 돈: 돈 걱정 없는 노후 위해 필요한 9가지 체크포인트
5. 후회없는 노후 위한 준비, 일: 50대 기술직 도전! 퇴직 5년 전부터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
6. 후회없는 노후 위한 준비, 가족: 은퇴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7. 후회없는 노후 위한 준비, 마음건강: 노후의 마음 건강을 위해 지켜야 할 8계명


- 본 콘텐츠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50대, 계륵 같은 나이다. 일하기는 싫고 생계 때문에 은퇴할 만한 상황이 아니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마음을 바꿔먹으면 꽃놀이패다. 일을 더 할 수 있는 나이면서 은퇴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50대가 되면 모든 게 하향 곡선이다. 존재감, 학습 능력, 건강, 재정 능력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가정에선 반려견 다음의 맨 끝 서열로 밀리고,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친구들과도 소원해진다. 특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믿었던 건강마저 흔들리면서 갈 때까지 간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바로 인생 2막이 답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게 권태와 무료함이라고 한다. 권태는 반복되는 일상이거나, 하는 일에 의미가 없거나, 하루하루가 재미없거나, 오늘은 또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삶이다. 은퇴 후 권태와 무료함 속에서 허덕이지 않기 위해, 퇴직 전 뭐라도 했어야 한다고 매일 후회 속에 보내지 않기 위해 나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웠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내 인생 2막에서도 일을 통해 적절한 만큼의 돈을 벌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내 몫을 해내고 싶었다.
나는 왜 기능을 배웠는가
필자는 2016년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하며 주경야독하다 드디어 2021년 2월, 33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했다. 남들은 실업급여를 타먹으라고 했지만 나에겐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업급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5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 조경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2년의 세월이 후딱 갔다. 이제 비로소 인생 2막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일하면서 좋은 점은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고, 잠자리 또한 편안하다는 것이다.

2015년 10월, 5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고정된 월급을 받던 정규직 월급쟁이에서 매년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다. 엄동설한에 잠옷 바람으로 문밖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을 대략 5년 정도로 잡았다. 그 5년 동안 무엇을 배워 어떻게 먹고살까를 고민했다.

먼저 투자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려했다. 가장 폼 나는 직업이다. 하지만 33년 동안 금융투자업에 종사하며 약간의 단맛과 상당량의 쓴맛을 직접 깨달은 바, 나는 전업투자자로서 그렇게 탁월한 재능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음은 사업을 일으켜 먹고사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빈 상가가 속출하고 여기저기 자영업자들이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며, 이 역시 접게 되었다.

먹고사는 마지막 방법은 노동을 파는 일만 남는다. 노동에도 나름 서열이 있다. 머리를 쓰는 사무직과 근육을 쓰는 기능직이다. 이른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다. 머리로 먹고사는 직업이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나름 폼 나 보여도 스트레스는 기능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적과 진급을 위해 과도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경쟁 또한 뜨겁다. 반면 근육을 쓰는 직업은 일하는 공간이 척박하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은 물론이고 때론 몸이 축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 머리를 쓰는 직업에서 일해온 나였다. 몸의 편안함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차라리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래서 기능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5년 동안 배운 기능을 나열해 보자면 도배, 굴삭기, 지게차, 대형 면허, 타일, 동부기술교육원 건축 인테리어과 졸업, 건물보수과 졸업, 전기공사과 졸업, 소방안전관리자, 미장, 조경 등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슨 기능을 그리 많이 배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각각 기능의 장단점과 한계 등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내게 맞는 직종을 택할 수 있었다. 지면상 모든 기능을 소개할 수 없어 아래의 여섯 가지 기능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현장 경험이 중요한 기능,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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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에 위치한 중장비학원. 굴삭기 운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실기 수업을 듣는 중이다.<사진:필자 제공>
굴삭기 운전 굴삭기 운전을 배운 중장비 학원은 김포에 있는 국비 지원 학원이었다. 2016년 10월부터 다녔는데 집에서 학원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거리다. 그 거리의 아득함을 밀어낸 것은 중장비 운전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아마 모든 남자의 로망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중장비 운전은 재미있었다. 마치 마징가 제트를 운전하는 쇠돌이 기분이었으니까.

굴삭기 운전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와 실기를 거쳐야 한다. 필기는 내연기관에 대해 배운다. 처음엔 좀 어렵다고 느끼지만 자주 수업을 들으면 익숙해진다. 실기는 두 번 보는데 첫 번째 실기는 S자 코스를 전진해 가서 후진해 돌아오는 코스다. 그리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실기에 합격하면 두 번째 실기로 넘어가는데 구덩이를 파는 시험이다. 정해진 크기의 구덩이를 파서 반대편 구덩이에 부리는 작업이다. 운이 좋아 한 번에 합격했다.

굴삭기는 지게차에 비해 취업문이 좁다. 지게차는 숙련 기사와 초보자의 기능 차이가 별로 안 나지만 굴삭기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숙련공이 한 시간이면 할 공사를 초보자는 하루가 걸릴 텐데 단순히 노임이 싸다고 초보자를 고용할 작업반장은 없다. 굴삭기 기능을 배울 분들은 이점을 유념해 진로를 정해야 한다.

대형면허 관광버스와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러웠다. 10m나 되는 버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특히 후진해 주차할 때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나도 그 전율을 느껴보고 싶었다. 대형면허는 노원구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학원에서 자비로 배웠다. 버스 운전은 중장비 운전처럼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2017년 2월 대형면허를 취득했다.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방이동 소재 영어학원에서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에 운전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직업을 탐색해야겠다는 생각에 프리랜서 자격으로 도전해본 것이다. 하루에 6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계약하고 일했다. 한 달 월급이 150만 원이었다. 일하는 기간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몇 번 학원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일하지 못한 기간만큼 일당을 못 받는다. 7·8월이 되자 학원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타일 2017년 3월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한 국비 지원 학원에서 타일 공법을 배웠다. 학원에서는 모르타르를 이용한 떠붙임 공법을 주로 배운다. 타일을 배워 해외로 진출하는 사람도 있다. 해외 취업 이민을 가기 위해선 자격증이 필요한 모양이다. 학원에 다닐 때 조선족 타일공이 호주 이민을 위해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와서 연습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포정의 솜씨를 보는 듯했다. 기능이 익으면 저렇게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도배일을 하며 타일을 배우던 젊은 친구도 있었다. 도배보다는 타일이 단가도 세고 장래성이 있을 것 같아 진로를 바꾸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 젊은이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기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 선임과 일을 할 때면,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노하우도 순순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들 경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능은 스스로 깨치거나 훔쳐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타일 기능은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경험을 쌓기 위한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궁리 끝에 일면식도 없는 타일 시공 사장님에게 부탁해 무급으로 따라다닐 테니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토요일과 일요일 2개월 정도 따라다녔다. 사장님이 “타일을 하면 밥은 먹고 살아요”라고 했는데 아마도 월 400만 원(2017년 당시) 이상은 가져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힘들고 작업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료 교육과정과 친구 찬스,
모든 기회를 활용해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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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명일역에 위치한 동부기술교육원. 이곳에서 건축인테리어과, 건물보수과, 전기공사과를 차례로 졸업했다.<사진:필자 제공>
서울동부기술교육원 3과 서울동부기술교육원에서 2016년 8월 건축인테리어과, 2018년 2월 건물보수과, 2018년 8월에 전기공사과를 차례로 졸업했다. 서울동부기술교육원은 강동구 명일역에 있고 전액 무료다. 서울에 주소를 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 경쟁률은 대략 3 대 1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야간은 주로 직장인이 수강한다. 6시30분에 수업이 시작되고 9시40분에 끝난다. 6개월 과정인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도 있다.

건축인테리어과에서는 콘크리트 건축물 구조와 이론에 대해 배웠다. 한옥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목공 연장과 전동공구를 직접 다뤄보고 몇 가지 가구도 만들어봤다. 그때 만들었던 소형 테이블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이론 수업반, 실기반으로 진행된다.

전기공사과는 이론 수업 비중이 높다. 전기기능사 시험을 보려면 수업을 대충 들어선 안 된다. 처음 몇 주간은 무척 힘든 시간이다. 사인, 코사인, 탄젠트 등 삼각함수가 나온다. 전기기능사 시험은 학기 중 한 번이라 방심하면 졸업할 때 자격증을 못 딸 위험이 높다. 필기에 붙었다고 하더라도 실기가 또 있다. 실기 또한 만만치 않다. 나도 교육원을 수료한 후 사설 학원에서 실기반을 몇 번 듣고 합격했다.

앞선 두 개의 학과보다 건물보수과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두 분의 교수님이 조화를 이루어 잘 이끌어주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분은 목공, 도장, 방수를 담당하시는데 위트가 있고 재미있는 분이다. 다른 한 분은 조적, 미장, 타일을 담당하시는데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수업을 진행하신다. 조적실습 시간에 만들어봤던 아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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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타르(모래+시멘트+물) 공급부터 시작하는 바닥 미장. 10~12시간 정도 작업해 여름엔 오후 5~6시, 가을과 겨울엔 밤 9~10시에 끝났다.<사진:필자 제공>
미장 친구 중에 아파트 바닥 미장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마침 동부기술교육원에서 미장을 배웠으니 그 친구를 통해 현장 경험을 해봤다. 벽 미장과 달리 바닥 미장은 허리를 구부리고 하는 것이라서 더욱 힘들다. 몇 번 영혼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했다. 친구 말마따나 뱃일 다음으로 힘든 게 미장이었다. 그래서 빡세게 25일 정도 일하면 개인당 1,000만 원을 가져가기도 한다.

미장 실습은 2017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년 4개월 정도 무급으로 주말마다 따라다니다 그만두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해서는 몸만 피곤하고 기능이 생각만큼 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 또한 민폐이기도 했다.

조경 선릉역에 친구 직장이 있어 자주 갔다. 점심시간에 선릉을 산책하다 선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 근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집 가까이에 헌릉이 있어 아내와 산책을 해보고 선릉보다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었다.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선왕릉과 고궁 관리 채용공고에 응시하기 위해 조경을 공부했다.

필기는 독학으로 했고 실기는 학원을 다녔다. 실기는 제도였는데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국비지원이 되는 곳도 있고 안 되는 곳도 있다. 조경이 나무와 숲을 관리하는 일이라 좋을 것 같지만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다. 거름 주고, 잔디 깎고, 전정(가지치기)하는 일이 모두 땡볕에서 하는 일이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낭만 하나로 시작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고 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다.
최선을 다한 5년, 후회 없는 인생 2막
퇴직 후의 계획은 미리미리 세워두는 것이 좋다. ‘닥치면 하지’라는 생각은 항상 후회를 동반한다. 계획한 일은 가급적 일찍, 회사일이 바쁘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무조건 몸으로 부딪쳐봐야 한다. 고생할 각오가 필요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그렇지만 대충 하겠다거나 일단 맛이나 보겠다고 시작하면 답이 없다. 자신이 몸담은 직업과 관련이 없는 생소한 분야의 일이라 해도 5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치면 어느 정도 손에 익힐 수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워크넷, 시설잡 등에 접속해 구직에 대한 정보 등을 미리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금까지 기능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과 발자취를 회상해 봤다. 회사 퇴직 후의 경과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은퇴 전 습득했던 기술 및 자격을 살려 시설관리직을 비교적 오랫동안 맡을 수 있었고, 5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 조경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첫 직장 월급이 220만 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330만 원으로 인상됐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적당히 힘든 일에 적당한 급여다.

지금의 나를 평가해 보면 생활은 궁핍하지 않고, 생각은 어지럽지 않고, 마음은 심란하지 않다. 잠자리는 편안하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폼 나는 명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 버리고 또 무엇이 내 2막을 열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다 보면 조금씩 넉넉함의 밀물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퇴직 전에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눈높이를 더 낮췄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지 않아 좋다. 최선을 다한 인생 전반, 그리고 퇴직 준비 5년이었다.
출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글. 버들치(필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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